한국일보

멈출 수 없는 분노와 사랑

2006-07-09 (일)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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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입 속에 모래가 아직도 씹혔다. 알 중위는 침을 뱉었다. 입이 말랐다. 수통을 열고 들이켰다. 벌써 빈 수통은 쉰 소리만 대신 냈다. 존 하사가 재빨리 자기 수통을 내밀었다. 알 중위는 고맙다고 사양하며 하늘을 쳐다봤다. 헬기가 소리를 내고 머리 위에 멈췄다. 존 하사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중위님 이제 됐어요, 저놈들을 박살 낼 수 있어요. 알 중위 얼굴은 그래도 일그러져 있었다.
알 소대가 2명의 실종된 해병 구출 임무에 차출된 지 일주일이 되어 가는데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알케이다의 거점인 흙색의 담들로 둘러 쌓인 주택들은 모래바람에 더욱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간간이 스나이퍼가 쏘는 총탄이 철모나 차량의 유리를 깨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했다.
알 중위는 이 수색 작전에 특별히 자원하고 최선을 다할 이유가 있었다. 4년 전 공사를 졸업할 때 그는 조종사보다 용맹을 떨치는 해병 보병을 지원했다. 그의 나라를 지키는 군인 정신은 유별났지만 그는 나약해 보였다. 해병 훈련소 조교들은 무던히도 나약해 보이고, 타군에서 특히 공군에서 편입한 알 소위에게 못되게 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밥 중사는 그렇지가 않았다.
겉으로는 까다롭게 했지만 알 소위를 끔찍이 위했다. 주말에는 집으로 초대까지 했다. 어여쁜 금발의 여동생이 자그마한 동양인 초급장교에 홀딱 반하고 있었다.
알 중위가 밥 중사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머리에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내가 그를 구출해야지.
알 중위는 어둡기 전에 수색작전을 펼칠 결심을 하느라고 눈을 감았다. 소대원 전부의 이름을 입 속으로 되뇌었다. 그는 헬기에 지원사격을 요청했다. 기관총이 불꽃처럼 주택위로 날아갔다. 로켓포가 골목을 흰 꼬리를 내며 들어가 터졌다. 곧 분대별로 집집을 뒤지는 것이다. 곳곳마다 어린아이 부녀자들의 울음소리에 콩 볶는 듯한 총소리와 어울려 야릇한 조화를 이루며 더 큰 공포를 자아냈다.
알 중위는 까만 눈동자가 빤짝이는 두 아이에게 겨눈 총을 내렸다. 다가서자 놀라서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들 뒤로 아버지가 총을 옷자락에 감추고 엎드려 있었다. 발 밑으로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의무병을 호출하고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때마침 존 하사가 문을 들어설 때 한방의 총소리와 함께 그가 그들 앞에 꼬꾸라졌다. 알 중위는 재빨리 천장을 향해 그의 기관단총에 불을 붙였다. 천장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모두가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서로 얼굴을 마주봤다. 모두가 왜 라고 하는 듯 눈의 초점을 잃고 있었다.
알 중위는 무선소리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키 상사가 보고를 했다. 신원불명의 2구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했다. 알 중위는 쏜살같이 달려갔다. 분대원들이 비통한 모습으로 수습된 시신을 그들의 윗도리로 덮고 있었다. 알 중위는 충혈된 눈으로 옷을 열었다. 그는 하마터면 현기증으로 쓰러질 뻔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모습, 분명 저들이 해병을 잔인하게 사살한 것이다. 얼굴, 팔, 다리가...
알 중위에게 선임하사가 두 해병의 소지품을 가져왔다. 아, 밥 중사의 동생 사진이 조금도 구겨지지 아니한 채 말끔히 웃고 있었다. 알 중위에게 공포에 떨고있는 검은 눈동자의 두 아이의 얼굴이 겹쳐왔다. 알 중위는 천천히 헬기가 내리고 있는 언덕으로 갔다. 들것에 누운 존 하사가 한쪽 손엔 링겔을 꽂고 다른 손을 벌리며 중위님 미안해요, 저만 고향으로 돌아가서요. 안녕. 알 중위는 헬기가 소리를 내고 하늘을 향해 오를 때까지 머릴 숙였다. 금발머리 소녀가 위문 편지에 넣어 보낸 글이 떠올랐다. 우리는 모두를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죠.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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