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름다운 소리

2006-07-06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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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칼럼

▶ 문무일/신뢰회복연합조직위원회 위원장

잔을 드니 한숨이 나오고/ 꽃을 보니 반갑도다…/
옛날 풍류를 즐기던 한량들은 기지와 해학이 담긴 말솜씨로 귀를 솔깃하게 했다던가. 음악이 아무리 뛰어난 소리를 내어본들 슬기와 지혜가 번득이는 사람의 목소리를 당해 낼 수 있으랴.
조선조 선조 때 내노라하는 당대의 명사들이 으뜸가는 소리가 무언가를 놓고 시회(詩會)를 연 적이 있다. 좌장인 송강 정철이 열었다.
“달밝은 밤에 달빛아래 누각비껴 구름가는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일송 심희수가 받아 읊었다.
“온산 붉게 물든 가을 산골짜기에 부는 바람결에 원숭이 울음소리는 어떨지…”
이때 서애 유성룡도 한 수 거들었다.
“새벽잠이 덜 깨어 설핏한데 항아리에서 술 거르는 소리가 그만이지요…”
이월사 같은 이는 아름다운 소리를 시골 초당에서 선비가 글 읽는 소리를 내세웠다. 뛰어난 기지를 자랑하는 오성 이백사의 풀이는 가히 걸작이다.
“동방화촉 좋은 밤에 가인이 치마끈 푸는 소리 보다 좋은 소리가 이 세상 또 어디 있으랴…”
공초 선생의 첫날밤 소리를 들어보자.
“아하 밤은 깊어가고/ 화촉독방의 불이 꺼졌네…// 허영의 의상은 그림자마저 사라지고… 홀연 그윽히 내밀려 터지는 소리/ 아야… 야!…/
그리고는 이 소리를 “생명의 비밀 터지는 소리”로 명명하기도 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죽는 것 말고는 소리를 내뿜는다. 듣기 좋은 소리가 있는가하면 듣기 싫은 소리도 있다. 우리가 듣는 소리에는 분명 품격과 함께 미추가 있다. 사실 듣기 좋은 소리 듣고 살기에도 아쉬운 삶인데 허구한날 듣기 싫은 소리만 듣고 산다면 그 삶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저주의 소리, 불평의소리, 헐뜯는 소리 등 사람답지 않은 소리와 마주치면 심기불편은 고사하고 성내고 화가 치미는 건 인지상정이다.
불가에서는 참다운 공양구야말로 화 안내는 공양구로 친다. 아름답지 못한 소리를 떨치고 사는 지혜가 삶의 질을 좌우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사람다운 소리를 내며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일일 것이다. 살다보면 쓴 소리 한마디에 마음의 눈을 뜨는 경우가 있다. 격려 한마디에 용기 백배하는 수도 있고 한마디 위로의 말을 듣고 인생관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
나더러 인간다운 소리를 대라면 주저 없이 용서의 소리를 들겠다. 용서는 화해가 있고 양보가 있고 인간적인 감동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장자는 청무성(聽無聲)을 들으라고 했다. 소리 없는 소리를 들으라는 것이다.
양심의 소리, 진실의 소리, 역사의 소리, 하늘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름다운 소리는 들을 수 없는 소리다. 내 마음속에 잠겨있는 소리는 나 홀로 듣는 소리다. 그 소리가 정녕 아름다운 소리인가를 짚어보며 살 일이다.
문무일/신뢰회복연합조직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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