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답은 많겠지만, 나의 답은 열심히 사는 것이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 空手去)의 인생여정에서 물질을 소유하려는 욕심의 본능은, 삶의 본능을 일으켜 주기는 하겠지만, 부귀영화가 곧 행복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상의 모든 것은 조물주의 것이니, 인간이 세상에 잠깐 살아가는 동안 남의 것을 사용하고, 만져보다 가는 것 뿐이다. 성경에서도 말한다. “없게도 마옵시고 넘치게도 마옵소서” 사람은 가난해도 죄를 짓기 쉽고 넘쳐도 죄 짓기 쉬우니 적당히 하루하루 먹고 살 수 있으면 그것이 사는 것이다. 그러기에 남고 넘치기 보다는 조금씩 모자라는 것이 열심히 사는 길로 인도한다.
인간들이 죄 짓는 것이나 불행해 지는 것은 너무 모자라거나 너무 많은 데서 오는 것이다. 경쟁사회에서도 지나친 승부 겨루기가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중용사상(中庸思想)으로 살고, 경쟁자도 상대를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살면 너도 좋고 나도 좋은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될 것 이다.
2004년 79세의 나이로 가신 농촌작가 전우익씨는 ‘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에서 모든 것을 내 것으로 살지 말고 모든 것을 이웃과 나누며 더불어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이 기계문명, 과학문명, 의학의 발달로, 편하고 재미있고 오래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으로 가치관을 착각하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기계문명은 인간의 숭고한 근면성을 앗아갔고, 과학문명은 자연의 파괴를 가져왔고, 의술의 발달은 출생과 사망의 자연스런 흐름을 혼란하게 만들고 있다. 자연의 섭리대로 살고, 내게 주어지는 것만 소유하면 모두가 평화롭다. 나의 지나친 소유는 남의 것을 뺏어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양심을 가져야 한다. 많이 있어도 불안하고 너무 없어도 불안하다. 행복은 채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데 있다고 했다.
나는 미국에 빈손으로 와서 30년을 일하며 열심히 살았다. 일 한 만큼 거두며 살았다. 40살 늦깎이 이민생활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주어진 환경에 순종하며 열심히 노력했다. 가정을 지키고, 자녀를 교육시키며, 짝을 찾아 독립시키고, 교회생활, 사회활동도 능력껏 했다.
이제 70나이로 ‘고로쇠 나그네’가 되어 지난날을 회고 해본다. 남은 여생 윤동주의 시 같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살아야지...’ 단풍같이, 서산에 노을같이, 아름답고 멋지게 살고 싶어, 오늘도 새로운 아침을 감사한 마음으로 맞이 한다.
먼 훗날, 이민 1세로 개척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들을 후손들은 어떻게 평가 할까? 오늘의 흔적은 내일을 위한 기록이요 역사다. 인간은 누구나 날마다 흔적을 남기며 산다. 기록을 남기며 산다. 글로, 사진으로, 그림으로, 예술로, 노래로 흔적을 남긴다.
내가 세상 무대에서 떠나며 남기는 흔적은 과연 무엇일까?
윤학재/워싱턴 문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