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윌리암과 ‘웅’ 선생님

2006-05-30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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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레건 체육관은 도복을 입은 학생들과 학부형들로 빈틈없이 차고 넘쳤다. 후끈후끈한 열기까지 감돌았다. 경기장 중간쯤에 윌은 웃통을 벗고 누웠다. 가슴은 콩당콩당 뛰었다. 그렇게 높이 보이던 천장도 코앞으로 내려앉을 만치
얕아 보였다. 조금 있으면 ‘웅’ 선생이 시퍼런 검으로 윌의 배 위에 놓인 사과를 눈을 가린 채 칼로 내리쳐 깨끗하게 가를 것이다. 윌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삭이며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제가 대담해서 움직이지 않게 하여 주십시요. 그래서 선생님이 사과를 정확히 자르게 하여 주십시오.”
윌은 세상에 태어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오늘처럼 용기를 내본 적이 없었다. 소심하다고 할까. 늘 기가 죽어 살고 있다고 아버지는 말씀해왔다. 그런 자신의 성격 탓도 있겠지만, 어려운 가정환경이 윌로 하여금 매사에 움츠리며 살게 했는지도 모른다. 나이 들어 이민 오셔서 늦게 결혼하신 부모님은 청소일을 하시며 간신히 생계를 꿀어오셨던 것이다. 윌이 14살이 되도록 허름한 방 두개 짜리에서 할머니와 함께 방을 쓰며 살아야 했다.
윌에게는 연로하신 할머니가 부모요 친구였다. 할머니는 그 굽은 허리에 윌을 업어 키우셨다. 어머님의 모유대신, 할머니의 입으로 거친 음식을 씹어서 윌을 어려서부터 먹이셨다. 윌에게는 소꼽친구도 없었다. 할머님은 윗 층의 소란스런 흑인 아이들과 윌이 자라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셨다. 유치원과 국민학교는 할머니와 걸어서 등교하고 집에 돌아올 때도 할머니는 벌써 학교 정문에 와 기다리셨다.
윌은 학교에서도 늘 뒤졌다. 읽고 쓰는 것, 발표력, 모두 밑바닥이었다. 한 반 아이도 윌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윌의 옷과 신발은 남루했다. 윌은 남들처럼 학교 버스를 타고 싶었다. 하루는 색깔이 다른 버스가 학교 입구에 섰다. 아이들이 몰려가서 탔다. 선생님이 친근한 한국말로 “너는 어때… 내 도장에 구경하러 가지 않겠니?”
윌은 이렇게 해서 ‘웅’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한국말로 태권도를 가르치셨다. 윌은 날 것 같았다. 선생님은 무서우리만치 엄격하게 훈련을 시키셨다. 도복을 살 수 없는 윌에게 도복을 가져다 주셨다. 윌은 늦게까지 남아서 청소며 선생님의 잔일을 거들었다. 선생님은 수업료도 받지 않으셨다. 윌은 학교숙제를 제쳐놓고 훈련에 열중했다. 윌의 가벼운 몸에 침착하기까지 한 윌을 선생님은 은근히 좋아하셔서, 칭찬대신 머리를 끄떡여 주셨다. 윌은 빠르고 날쌨다. 큰 아이도 성인도 그의 민첩함과 침착하고 대담함에 혀를 내 둘렀다.
한 반 학교 아이들이 윌에게 굽실거렸다. 덩치 큰 흑인아이나, 공부 잘하고 부잣집 백인 아이들이 책가방을 들어주고 숙제를 해준다고 법석을 댔다. 윌은 예나 지금이나 겸손하고 과묵했다. 점차로 학교전채가 윌에게 관심을 돌렸다. 윌은 어쩔 수 없이 숙제를 했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매번 열 권이 넘는 책을 집에 가져갔다.
선생님은 윌에게 아직 검 쓰는 법을 가르치지 않으신다.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신다고 했다. “칼은 겸손한 사람에게만 쓸모가 있지. 더욱 겸손해라, 윌.”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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