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한의 뒤안길에서
2006-05-28 (일) 12:00:00
반평생 넘게 살아온 연령층의 분들은 한번쯤 자기가 걸어온 인생길을 되돌아보았으리라 짐작된다.
며칠 전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향기로움을 만끽하며 무념무상 공원길을 걷다 바로 옆에 사람이 쉬어갈 수 있게 한 쉼터가 있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털썩 주저앉고 보니 문득 나도 나 자신의 길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젊은 시절 인생의 항로가 멀게만 느껴졌기에 더디 가지 않기 위해서 뜀박질을 하기도 하고, 비행기를 타고 하늘 높이 솟아 양쪽 날개를 펴서 날아가듯 가보기도 했고, 좋은 시절에 그 무엇을 잡기 위해 모든 지혜와 지식을 총동원해 각축전을 벌여가며 쟁취했던 그때 그 시절이 지금 나이가 되어서 뒤돌아보니 그리 길지도 않았던 세월 속에 마치 하늘에 떠가는 흰 구름 한 조각처럼 부질없고 덧없이 보낸 시간들이 아니었던가 자숙해본다. 또 숨도 쉴 사이 없이 달려온 처지가 자신을 비웃고있듯 스스로 경망스럽고 민망스럽기까지 느껴졌다.
내가 걸어왔던 이 길이 결코 순탄하지만 아니 했던 것 같다. 험한 가시덤불 같은 길로 헤매고 갈 때고 있었고, 어둡고 긴 터널을 기어 나오기도 했으며, 배를 타고 바다로 항해하다 풍랑을 맞아 난파되기도 했었던 그런 날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밝게 눈부신 햇살이 비추는 환상적인 날들도 맛볼 수 있었기에 때로는 지치고 나약해진 몸과 정신을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도 가졌었다.
나에게 아픔과 고난의 시간들이 닥쳐온 것은 2년 전. 갑자기 몸이 아파 쓰러져 이사불성이 된 상태에서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때 그 상황으로 의사가 1% 정도밖에는 살아날 가능성이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놓으라는 최후 통첩 같은 말을 남겼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 1%의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걸고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은 물론 영원한 동반자인 위대하신 그 분과 친교가 두터운 아주 많은 분들의 병문안과 극진한 기도 속에서 기적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즉 3일간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에서 소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적이란 나에게는 전혀 없는 줄만 알고 살아왔기에 눈물만이 하염없이 두 뺨을 적셨다.
앞으로는 나보다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족한 분들을 위해서 그 무언가를 해주고 싶고, 작은 도움이라도 큰 힘이 되어 쓰여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곧 실행에 옮기고자 한다. 남을 사랑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지난번 아픔의 체험과 지금껏 걸어오면서 경험한 것을 통해 터득하게 된 것이 무척이나 다행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스스로 행복하고 값진 삶과 남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해주는 따스한 가슴을 갖고 있는 자식들을 보면서 나 역시 헛되게 살아오지는 않았구나 느껴본다.
아직도 남아 있는 우리들의 청사진을 펼쳐들고 아내와 나는 서로 마주보며 희망찬 내일을 위해 환하게 웃고 있다.
홍병찬 / 워싱턴 문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