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 봄 단상

2006-04-0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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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생각하며

▶ 채수희/수필가

산하의 푸른 빛과 함께 겨우내 움추렸던 꽁꽁언 몸과 마음에도 서서히 활기찬 봄이 오고 있다.
아직은 꽃샘바람이 불지만 본격적인 봄의 기운을 뿜어내는 대자연의 법칙을 누가 막는가. 겨울을 지난 목련과 개나리, 벚꽃 등이 꽃망울을 터트리며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어김없이 순환되는 대자연은 메마른 우리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고 있다. 봄의 절기에 맞게 새싹이 솟아나며 살아 있는 것을 보며 우리 영혼에도 어디선가 푸른 생명의 새순이 솟아나는 것만 같다.
그것이 창조의 힘이든 사랑의 싹이든 안에서 새롭게 꿈틀거리며 손을 내밀어야 살아있는 것, 그래서 인간은 자연을 사랑의 대상으로 볼 때 현재와 미래까지 보는 것이다.
그래서 봄은 자연과 사람앞에서 겸허해지는 계절이다.
조선시대 새시대의 여명을 알리고자 <동학>을 세웠던 수운(水雲) 최제우 선생은 “한 송이 꽃이 피니 봄이 오네 또 한사람이 꽃이 피니 온 집안이 꽃밭이라”하였다.
세상의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오직 한사람 한사람만이 어둠을 딛고 내면의 빛을 꽃으로 피워낼 때만 봄이 온다는 뜻이다.
봄은 이렇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계절이다.
인생도 죽음의 끝이 곧 삶의 시작이요, 삶의 끝이 곧 죽음의 시작이지만 실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서로 이어주고 윤회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필연의 존재임을 느낀다. 장대비를 맞아도 나뭇잎은 연약하지 않다. 노도가 없는 바다는 바다가 아니며 위험이 따르지 않은 산은 산이 아니라고 한다.
이 세상은 무엇보다 혼자 태어나지 않는다. 기쁨은 슬픔과 함께 소망은 절망 속에서 씨앗으로 싹이 튼다.
인생도 희로애락의 연속이 아닌가. 옛 어른들은 만물 속에 자연의 이치가 들어있다고 했다.그래서 자연은 늘 고달픈 현실에서 정신세계의 밝은 점만을 생각하지 않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다시 생각할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한다.
또한 순환하는 자연의 변화를 되풀이해 보여주면서 자연은 인간에게 변화 속에서 지혜를 깨닫게 한다. 이제는 자연의 이치 속에서 계절이 변할 때마다 나 자신을 차분히 응시할 시간이 많아짐을 느낀다.
광활하고 무한한 우주속, 작고 보잘것없는 인간의 존재를 생각하며 자연에의 순응과 신비로움을 넓은 심안으로 배울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
새봄을 맞으며 우리모두의 마음에도 봄볕처럼 온화한 따스함과 화사함이 넘치는 생활이 되길 기원해본다.
채수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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