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딸을 시집보내던 날

2006-03-19 (일)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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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생각]

▶ 홍병찬/워싱턴 문인회

인륜지대사 가운데서도 가장 큰 것 중 하나가 결혼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이 사실인 것 같다. 곁에서 친척이나 이웃이 혼례를 맞는 심정을 그때는 잘 몰랐던 것이 첫째 딸을 직접 여의고 보니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여식을 데리고 신부 입장의 웨딩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한 발짝 한 발짝 떼어놓는 순간마다 왜 그리 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앞, 좌우 하객들의 박수 속에 정신마저 혼미해지는 것 같고, 자주 웨딩드레스 옆 자락을 밟아 그것에 신경을 다 쏟아 부었더니 주례와 신랑 있는 데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몰랐다. 사위에게 여식을 고이 인계해주면서 모나지 않게 아껴주고 사랑해주라는 뜻으로 어깨를 살짝 두들겨 주었다.
대부분 부모들이 자녀들을 성인이 될 때까지 인성교육을 포함해 사회에 중요한 인물이 될 수 있게끔 만들어주신 것과 같이 아내와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가족대표로 하객분들에게 인사말을 할 때는 오히려 신부를 데리고 입장할 때보다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예식을 끝내고 신랑, 신부가 퇴장하기 직전에 딸의 눈을 보니 무척이나 행복한 눈빛을 볼 수 있었는데, 그런데도 나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 저 밑바닥에서 그 무언가 복받쳐 올라오는 감정으로 인해 눈시울을 적셨다. 그러면서 이 험한 세상 서로가 다리가 되어 아껴주고 사랑해주면서 멋지고 값어치있게, 그리고 행복이 넘치는 신혼생활의 장을 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이들에게 무언의 말을 던져주면서 옆에 앉아있는 사랑스런 아내를 살짝 보니 모성애로 딸자식을 그윽히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객분들의 우렁찬 박수 속에 남녀 들러리들이 퇴장하고 그 뒤로 신랑, 신부가 나갔고 그 다음 들러리 화동들의 뒤를 따르면서 아내와 함께 식장을 뒤로했다.
딸을 시집보낸 다음날 저녁에 둘만이 있으니 마치 아무도 없는 외딴 곳에 와있는 기분이 들었다. 평상시에 집의 크기가 보통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따라 왜 집이 크게 보이고 느껴지는지. 이층에 딸이 쓰던 방을 보니 처음 들어가는 야릇한 심정이 되어서 침대를 다시 정돈하면서 딸의 따스한 체온이 남아있는 것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모든 부모들의 마음은 한결같아 아들딸들이 아주 건강하고 잘 살아달라고 오늘도 소원을 빌면서 살아갈거라 생각이 든다.
홍병찬/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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