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과정을 가볍게 여기고 결과만을 중시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결국 어찌 됐대?”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끝을 향해서만 달려간다. 이 점에서는 여성보다 남성이 훨씬 심하다.
야유회를 예로 들어 보자. 여성들은 떠나기 전날부터 들떠 있다. 옷을 이것저것 입어 보고, 도시락통을 열었다 덮었다 하며 설렘에 잠을 설친다. 가는 길 내내 웃고 떠들며 야단법석이다. 그러나 남자들은 가는 내내 무뚝뚝하다. 산 정상에 올라서야 잠깐 기뻐하고, 내려와서 “어땠어?” 하고 물으면 “그냥 좋았어” 한마디로 끝낸다. 여성들은 돌아오는 길에도 정상에서 느낀 그 기분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그래서 한 번의 나들이에서 여성은 하루 종일, 열 몇 시간을 행복해하는데, 남자들의 행복은 고작 한두 시간에 머문다.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은 만나기 전부터 설레고, 만나서 손잡고 거닐고 함께 밥 먹는 그 모든 순간을 행복해한다. 그러나 남자는 과정보다 결과에 매달려, 함께 잠드는 그 끝에서만 행복을 찾으려 한다. 이것을 인종과 문화로 넓혀 보면, 한국인이나 중국인 같은 동양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에 비해 유독 결과만을 좇고, 오직 결과에서만 행복과 성공을 찾으려 한다. “그래, 결국 하버드에 들어갔대?”, “그래서 결국 성공했대?” 무엇이든 ‘결국 어떻게 됐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과정은 늘 억지로 견디고 참아 내야 하는 것이 되고, 좋은 미래와 좋은 결과만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이 경향이 우리 조선족에게는 한층 더 심하다. 우리는 아직 오지도 않은 결과,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만을 그리며 살아간다. “돈 벌어서 나이 들면 편히 살아야지”, “돈 모아서 나중엔 여행이나 다니며 살아야지.” 그러나 정작 나이가 들고 나면 여기가 아프고 저기가 쑤셔, 돈이 있어도 어디 한 군데 다니지 못한다. 늙어서 좋은 것 실컷 먹으려 했더니 소화가 안 되고, 이가 없어 먹는 일조차 고통이 된다.
“이다음엔 잘 살아야지” 하며 고향에 사 둔 큰 집은 미래의 보금자리라는 이름으로 빈집인 채 남겨 두고, 정작 자신은 쪽방에서 고생고생하며 산다. 그러다 마침내 그 “큰 집”으로 들어갈 때는, 이미 늙고 병든 뒤다.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해야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말도 옳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고 싶다.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하면 일하는 과정 자체가 늘 행복하니, 사는 내내 행복할 수 있다. 거기에 결과까지 좋다면 그 행복은 더 클 것이다.
그러니 결론은 이렇다.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결과보다 과정을 앞세우는 삶을 살자. 결과를 위해 과정을 희생하지 말자. 과정이 행복해야, 비로소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