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권력은 어떻게 예술이 되었는가-메디치와 피렌체

2026-03-26 (목) 04:32:36 곽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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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노은의 이탈리아 여행기 ①

권력은 어떻게 예술이 되었는가-메디치와 피렌체

소박한 외벽 뒤에 숨겨진, 메디치의 기억이 쌓인 공간.

“삼 주 동안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그곳을 여행한다는 것은 장소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건너는 일이었다.
나는 걷기보다 머무는 법을 배웠다. 그 시간의 이야기를, 다섯 편에 걸쳐 전하려 한다.”

피렌체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이 도시의 아름다움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그 뒤에는 이름 하나가 있다. 메디치. 그들은 왕이 아니었다. 왕관도, 군대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도시를 움직였고, 시대를 바꾸었다. 권력은 언제나 칼에서 나오지 않는다. 때로는 돈과 안목에서 나온다.

산 로렌초 성당 앞에 서면, 처음에는 다소 소박해 보인다. 화려한 대리석 장식도, 완성된 외벽도 없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차가운 돌과 따뜻한 빛이 교차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 흐르는 묵직한 침묵. 이곳은 단순한 성당이 아니다. 메디치 가문의 심장이다.


코시모 데 메디치, ‘국부’라 불렸던 그 사람은 알고 있었다. 권력은 오래 남지 않지만, 기억은 남는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도시를 지배하기보다, 도시를 빚기 시작했다. 건축가를 부르고, 화가를 후원하고, 조각가에게 돌을 맡겼다. 기도의 장소이면서, 가문의 영원성을 선언하는 무대. 신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도, 인간의 이름을 남기려 했던 의지. 그 긴장 속에서 르네상스는 태어났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미켈란젤로가 만든 메디치 예배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시간, 낮과 밤, 새벽과 황혼이 조각으로 누워 있다. 죽음조차 사유가 되는 공간. 여기서 메디치는 권력자가 아니라, 시간을 다루려 했던 존재처럼 보인다.

그리고 도시의 다른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또 하나의 세계가 나타난다. 아르노 강 건너편, 묵직하게 자리 잡은 피티 궁전. 처음 이 궁전은 메디치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의 손에 들어갔고, 그 순간 이 건물은 단순한 저택에서 ‘왕의 공간’으로 변한다. 높고 거친 석재 외벽은 말없이 선언한다. 이곳이 피렌체의 중심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황금빛으로 가득한 방들, 천장을 가득 채운 프레스코, 끝없이 이어지는 갤러리. 권력은 여기서 더 이상 숨지 않는다. 그것은 드러나고, 과시되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한 방 한 방을 지날 때마다 묻게 된다. 이것은 예술인가, 아니면 권력의 언어인가.

그러나 오래 머물다 보면, 그 질문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메디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이야말로 가장 오래 지속되는 권력이라는 것을. 그들은 칼 대신 붓을 선택했고, 성벽 대신 그림을 남겼으며, 왕좌 대신 도시 전체를 무대로 삼았다.

그래서 피렌체는 특별하다. 이곳에서는 권력과 예술이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완성한다. 산 로렌초에서 시작된 조용한 기도는, 피티 궁전에서 화려한 선언이 된다.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것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메디치는 신을 사랑했지만, 결국 인간을 선택했다. 그 믿음이 화가를 불러왔고, 조각가를 깨웠으며, 건축가를 움직였다. 결국 그들은 한 도시를 통해 하나의 시대를 만들어냈다.
피렌체를 떠나며 생각했다. 권력은 지배도, 소유도 아닐지 모른다. 이 도시에서 그것은, 아름다움을 남기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메디치는 그 방식을 누구보다 먼저 선택했다.

<곽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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