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눈이 말을 대신하던 날

2026-01-29 (목) 08:04:36 이은애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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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이
세상을 잠시 멈춰 세운 아침

습관처럼 연 커튼 너머로
백설기보다 더 두터운 눈이
나뭇가지와 지붕 위에
천천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얗게

아무도 오갈 수 없다는
라디오의 짧은 소식은
방 안의 시간마저
낮게 가라앉혔다


눈이 만들어 낸 이 고요 속에서
나는 문득
가슴 깊이 남아 있던
끝내 닿지 못한
사랑의 온기를
다시 느꼈다

오지 않는 그 길을
잠시 바라보았고

눈으로 덮인 세상 한가운데서
한 마리 새가 되어
그 사랑을 품은 채
조용히
날아가고 싶어졌다

눈은
아직도
말없이
내리고 있다.

<이은애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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