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베이글 가게의 새벽 네시

2026-01-29 (목) 08:04:15 석민진 워싱턴문인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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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나의 일상은 노동의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많은 동기가 카페나 식당에서 땀 흘리며 세상의 온도를 익힐 때, 나는 과외나 통역으로 시간을 보냈다. 당시의 나에게 육체적인 노동이란 내 삶과는 무관한, 타인의 풍경일 뿐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카페에서의 일상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하루를 열고, 손님들이 주문하는 커피와 차를 정성껏 빚어내며 사람들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는 그런 풍경 말이다. 실제로는 낭만보다 지독한 피로가 앞섰을 테지만, 카페 창업이라는 새로운 길을 꿈꾸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시절의 ‘경험 없음’이 짙은 아쉬움으로 배어 나온다.

후회는 늘 제때 오는 법이 없어, 정류장을 떠난 버스를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처럼 나는 놓쳐버린 시간을 뒤늦게 되씹을 뿐이었다. 그러던 지난 여름, 워싱턴 DC의 어느 골목에 자리 잡은 오래된 베이글 가게에서 며칠간 일할 기회를 얻었다. ‘베이글… 등등(Bagels… ETC)’이라는 정겨운 이름의 가게였다. 그곳을 지키는 주인은 일흔을 훌쩍 넘긴 한국인 노부부였는데, 올해에 장장 40주년을 맞는다고 했다. 사십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반죽을 치대고 뜨거운 열기 앞에 서 있었던 그들 모습 자체로 한 편의 묵직한 이민사(移民史)를 증언하고 있었다.


그 집의 베이글은 정통 뉴욕식의 단단하고 쫄깃한 식감을 고수했다. 하나를 다 먹고 나면 왠지 어른스럽게 책임감 있는 한 끼를 해냈다는 기특함마저 들게 하는 맛이었다. 에브리띵, 양파, 프렌치토스트, 할라피뇨는 물론 시나몬 레이즌까지 끝도 없이 이어지는 메뉴를 보며, 인간이란 아침 식탁에서조차 이토록 무궁무진한 변화와 선택을 갈망하는 존재인가를 생각했다.

새벽 다섯 시, 주방은 이미 하루의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화씨 450도의 고온으로 달궈진 오븐과 펄펄 끓는 가마솥의 연기 속에서 사장님의 손놀림은 경이로운 리듬을 만들어냈다.

뜨거운 김이 자욱한 공간에서 갓 삶아낸 베이글이 오븐으로 옮겨지고,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주문표는 쪽지에 흘려 쓴 암호처럼 날아들었다. ‘2P BEC(플레인 베이글 두 개, 베이컨·에그·치즈)’, ‘O(SO) LC(양파 베이글 속을 파내서 크림치즈 조금만)’. 처음엔 당혹스럽던 군사 암호 같은 글자들이 어느덧 익숙한 노래 가사처럼 내 몸에 실렸다.

가장 생경했던 것은 몰입이 가져다 주는 시간의 상대성이었다. 새벽 세 시 반에 일어나 일곱 시를 맞이하니 하루는 벌써 세 시간이나 깊어져 있었다. 한참을 일하다 ‘이제 점심시간이려나’ 싶어 시계를 보면 아직 오전 열 시였다. 이곳은 시간이 참으로 이상하게 흐르는구나 싶어 헛웃음이 났다.

시간은 시계 태엽의 규칙적인 간격이 아니라, 발효되는 반죽의 숨소리와 오븐의 뜨거운 호흡에 따라 흐르는 것임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며칠간의 짧은 분투 끝에 배운 것은 단순하지만 명확했다. 우리가 무심코 삼키는 베이글 하나에도 누군가의 ‘새벽 네 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참으로 명쾌한 질서로 돌아간다. 누군가는 묵묵히 만들고, 누군가는 감사히 먹는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빵 한 조각에 담긴 서로의 온기를 이어가며 오늘을 살아낼 힘을 얻는 것이다.

이제 나도 카페를 열 준비가 되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여전히 대답 대신 자신 없는 떨림이 앞선다. 그러나 그 새벽,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소리와 오븐의 열기 속에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 인생은 완벽한 준비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같은 시간에 오븐 앞에 서는 성실함으로 완성되어 간다는 것을. 이제 나도 누군가의 텅 빈 아침을 다정한 커피 향과 정성이 가득 담긴 빵으로 채워줄 수 있는, 그런 단단한 새벽을 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석민진 워싱턴문인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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