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공화정은 482여 년간 ‘원로원과 로마 시민(SPQR)’이라는 기치 아래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지탱해 온 인류사의 위대한 실험장이었다. 그러나 기원전 1세기, 이 견고한 시스템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등극으로 종언을 고했다. 건국 250년을 맞이한 현대 민주주의의 보루, 미국이 카이사르 시대의 로마와 겹쳐 보이고 있다.
카이사르가 공화정을 해체한 과정은 단순한 무력의 찬탈이 아니었다. 그는 체제 내부에 누적된 모순을 정교하게 추출하여 자신의 권력 동력으로 삼았다.
첫째, 분노의 조직화와 포퓰리즘의 발흥이다. 극심한 빈부 격차와 토지 독점으로 민중의 삶이 피폐해졌을 때, 카이사르는 기득권인 원로원에 맞서는 ‘민중의 대변자’를 자임했다. 제도 정치가 외면한 대중의 고통은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 열광으로 치환되었고, 카이사르의 궤변은 법치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다.
둘째, 국가 공권력의 사유화다. 공화국과 법에 충성하던 로마 군대는 점차 사령관 개인에게 종속되었다. 생계와 전리품을 보장하는 장군에게 군인들의 충성이 옮겨가면서, 군대는 국가의 방패가 아닌 개인의 칼이 되었다.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널 수 있었던 힘은 공화정의 헌법이 아니라, 영토 확장의 영광을 함께 하면서 사적으로 결속된 제13군단의 무력에서 나왔다.
셋째, 비상 사태의 일상화다. 카이사르는 영토 확장 전쟁과 내전의 위기를 명분으로 ‘종신 독재관’의 지위를 획득했다. 비상시의 한시적 장치였던 독재관 직무가 상시적 권력으로 변질되면서, 공화정의 근간인 임기제와 권력 분립은 무력화되었다.
카이사르 사후 아우구스투스는 공화정의 껍데기를 유지하면서도 실질적인 1인 통치인 ‘제정’을 완성했다. 시민들은 혼란스러운 자유 대신 질서 있는 황제 통치의 예속을 택했다.
오늘날 미국의 풍경은 이 비극적인 로마의 황혼을 연상시킨다. 건국 초기의 견제와 균형은 파열음을 내고 있으며, 공화주의의 정신은 퇴색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위기는 세 가지 징후로 요약된다. 먼저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다. 상대를 협상의 파트너가 아닌 섬멸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증오의 정치’는 의회 민주주의의 토양인 대화와 타협을 고사시킨다.
또한 권력의 개인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법과 제도보다 지도자의 의중이 우선시될 때, 사법부와 행정부의 독립성은 정파적 이해관계에 매몰된다. 마지막으로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이다.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헌법적 절차를 부정하는 행태는 공화정의 기둥을 뿌리째 흔든다.
스스로 법을 만들고 전쟁터에 나가며 공화국의 주인으로 책임을 다했던 로마 시민들이 황제가 던저주는 ‘빵과 서커스’에 탐닉하며 권력의 집중을 방관했을 때 공화정은 이미 사멸의 길을 걷고 있었다. 오늘날 미국 시민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명확하다.
무엇보다 ‘강한 지도자’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본디 시끄럽고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그 비효율이야말로 권력의 폭주를 막는 최후의 방파제다. 모든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겠다는 ‘카이사르적 환상’에서 벗어나, 느리더라도 제도가 작동하게 하는 시민적 인내가 절실하다. 또한 사실에 기반한 비판적 사고를 회복해야 한다. 디지털 광장을 점령한 가짜 뉴스와 선동은 고대 로마의 웅변가들이 휘두르던 무기보다 훨씬 파괴적이다.
역사는 기계적 반복을 하지 않지만, 그 구조적 패턴은 시대를 달리하며 회귀한다. 로마 공화정의 몰락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부패와 분열 그리고 시민의 무관심에서 시작되었다.
민주주의는 투표라는 절차를 넘어, 타자를 존중하는 ‘태도’로서 완성된다. 지금 미국 시민들이 쥐고 있는 투표용지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루비콘강 앞에 그어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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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