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과 삶 사이의 모순

2026-01-23 (금) 07: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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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혁 패사디나, MD

우리는 누구나 이율배반 속에서 살아간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순간들은 생각보다 흔하고, 표리부동이나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일상어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상하게 부르면 이율배반이지만, 일상에서는 대개 자기합리화로 드러난다.“외롭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혼자 남겨질까 두려워 웃음을 짓는 사람처럼, 어느 정도의 모순은 인간적인 모습이다. 문제는 그 모순이 반복되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작동할 때다.

늙어서 빨리 죽고 싶다 말하면서 온갖 약과 영양제에 의지하고,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로 행동을 정당화하는 태도는 더 이상 이해의 영역이 아니다.
진짜 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말하지 않고, 사랑하며 사는 부부는 사랑을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 “사랑해서 헤어졌다”는 말 또한 그럴듯하게 포장된 모순일 수 있다. 말이 앞설수록 삶은 종종 그 반대 방향으로 흘러간다.

부모의 태도에서도 이율배반은 쉽게 발견된다. 아들이 집안일을 하면 못마땅해 하면서도 사위가 하면 흐뭇해하는 모습, 겉으로는 자녀를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은 장면은 낯설지 않다. 말은 공평하지만 마음은 계산적이다.
삶과 죽음 앞에서도 인간은 모순적이다. 종교 없이도 담담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음을 앞두고도 담배를 놓지 않는 노인도 있다. 호스피스가 오히려 더 고통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인간의 선택이 결코 논리만으로 설명되지 않음을 실감한다.


행복을 설파하던 전도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성공을 가르치던 사람이 파산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씁쓸하다. 말한 대로 살기 어렵다는 사실이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결국 내로남불은 개인과 집단의 이기심에서 비롯된다. 자신에게 유리하면 선이 되고, 불리하면 악이 되는 태도는 이제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마저 이를 자연스럽게 배워가는 시대다.

나이가 들수록, 죽음을 가까이 느낄수록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말이 아니라 더 분명한 기준이다. 예수가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한 것도, 인간의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이 모순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선악의 기준은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의 이익에 따라 기준을 바꾸는 삶만큼은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의 중심이 무너지고, 사회의 균형도 함께 무너진다.

우리는 이율배반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안에 머물러 살 필요는 없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 그것이 이 모순의 시대를 버텨내는 최소한의 품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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