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식단 전쟁의 포화 속, 진짜 답은 몸 안에 있다

2026-01-21 (수) 07:53:42 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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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식단이 명멸하는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육식이냐 채식이냐, 저탄수냐 고탄수냐의 논쟁은 마치 에어컨과 히터 중 무엇이 더 옳은 기계인지 따지는 것만큼이나 소모적이라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기계의 성능이 아니라, 그것이 가동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질문은 자연스럽게 외부에서 내부로 향해야 한다. “남들이 좋다는 식단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지금 내 몸의 환경은 어떤 상태인가”라고 말이다.

몸은 끊임없이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거나, 그 의미를 오독(誤讀)한다. 식후에 밀려오는 피로감을 “나이가 들어서”라며 넘기고, 만성적인 더부룩함을 “원래 위장이 약해서”라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한의학적 관점에서 이러한 증상들은, 몸이 현재의 기상도를 알려주는 긴급한 타전(打電)이다.
예를 들어 식사 후 유독 졸리고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진다면, 이는 소화기관이 음식의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 기운이 처지는 ‘기허(氣虛)’의 신호일 수 있다. 반대로 얼굴이 쉽게 붉어지고, 가슴이 답답하며, 입이 자주 마른다면 이는 엔진이 과열된 것처럼 몸 안에 열이 갇혀 있다는 뜻이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누군가는 활력을 얻고 누군가는 독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먹는 음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몸의 상태가 지금 서로 다른 탓이다.


‘좋은 음식’이 ‘독’이 되는 역설

최근 진료실에서 ‘몸에 좋다’는 이유로 특정 식단을 종교처럼 신봉하다가 오히려 건강을 망친 환자들을 자주 마주한다.
이 비극은 음식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몸 상태라는 맥락(Context)을 소거한 채, 하나의 원칙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한의학의 지혜: 채움(補)과 비움(瀉)의 미학

한의학에서 식단을 처방할 때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은 영양소의 총량이 아니라 ‘균형’이다. 단백질이나 비타민의 함량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사람의 몸이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 할(보, 補) 상태인지, 아니면 덜어내야 할(사, 瀉) 상태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몸이 차고 엔진의 출력이 떨어진 상태라면 따뜻한 성질의 음식으로 기운을 북돋워야 하고, 노폐물이 쌓여 순환이 막히고 열이 끓는 상태라면 차가운 성질의 음식으로 열을 내리고 독소를 배출해야 한다. 더욱이 이 기준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체내의 열은 순식간에 치솟고, 수면이 부족하면 소화 기능은 급격히 떨어진다. 어제의 나에게 맞았던 식단이 오늘의 나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몸은 고정된 조각상이 아니라, 계절과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접시가 아닌, 당신의 몸을 보라

식단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은 “무엇을 먹을까?”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여야 한다. 현재의 실내 온도를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에어컨이나 히터를 켜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식단의 전쟁이 치열해질수록 답은 더 가까운 곳에 있다. 당신의 접시 위가 아니라, 당신의 몸 안에 말이다.
문의 (703)942-8858

<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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