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년 건강검진을 받고 수많은 숫자가 적힌 결과표를 받아 든다. 공복혈당, 중성지방, 콜레스테롤, 간 수치 같은 항목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그 숫자를 단순히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적 성적표로만 여기고 서랍 속에 넣어두곤 한다. 사실 이 수치들은 단순한 결과표가 아니라, 내가 오늘 저녁 식탁에 무엇을 올리고 무엇을 덜어내야 할지 알려주는 가장 정직한 ‘개인 맞춤형 식단 안내서’이다.
한의학적으로 보면 이 수치는 곧 몸의 기운이 어디에서 막히고, 어디에서 과하거나 부족한지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그러므로 진정한 식단 관리란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숫자로 건네는 이 신호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혈당 수치가 높을 때, 과부하 걸린 인슐린을 쉬게 하라
만약 공복혈당이나 당화혈색소(HbA1c) 수치가 높다면, 이는 내 몸이라는 공장이 이미 포도당 처리에 극심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경고이다. 엔진에 연료가 너무 많이 들어와 창고가 넘치고 있는 격이다. 한의학적으로는 이를 끈적한 노폐물인 ‘습담(濕痰)’이 쌓인 상태로 본다. 달고 끈적한 음식은 습(濕)을 더해 기운의 순환을 가로막는다.
이때 가장 필요한 처방은 인슐린을 쉬게 하는 것이다. 정제 탄수화물을 과감히 줄이고 단백질과 양질의 지방 비율을 높이는 식단 전환은 단순한 다이어트가 아니라, 대사의 휴식을 유도하는 과정이다. 몸 안의 탁기를 덜어내고 끈적해진 흐름을 맑게 하는 것, 그것이 혈당 수치가 우리에게 보내는 첫 번째 주문이다.
중성지방과 지방간의 경고, 당을 줄여 간의 열을 식혀라
중성지방이 높거나 지방간 진단을 받으면 많은 이들이 지방 섭취부터 끊으려 한다. 그러나 실제로 간에서 중성지방을 만드는 주된 재료는 과도한 탄수화물과 설탕이다. 간 수치(AST, ALT)의 상승은 과로와 스트레스, 그리고 잘못된 연료 공급으로 인해 간이라는 화학 공장이 과부하에 걸려 열을 내고 있음을 뜻한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간의 울체’ 혹은 간에 열이 쌓인 상태로 본다. 술과 단 음료, 가공식품은 간에 열과 습을 더해 염증을 유발한다. 이때는 식단을 단순화하고 가공식품을 줄여 간이 스스로 정화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핵심이다. 쓴맛 채소나 녹색 식재료를 통해 간의 열을 내리는 ‘청열(淸熱)’의 과정이 당신의 수치를 바꿔놓을 것이다.
콜레스테롤의 역설, 무조건 고기를 끊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고 해서 모든 고기와 지방을 죄악시할 필요는 없다. 중성지방이 정상이고 HDL이 높은 경우라면, 오히려 탄수화물 과잉이 문제일 가능성이 더 크다. 하지만 LDL이 높으면서 염증 지표까지 함께 상승했다면 혈관 내부의 흐름이 탁해졌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한의학적으로 혈중 지질의 이상은 피가 끈적해져 흐름이 정체된 ‘어혈(瘀血)’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금식이 아니라 혈액의 순환을 돕는 식단이다. 생강, 마늘, 등 푸른 생선은 굳어진 어혈을 풀고 혈관의 탄력을 돕는 훌륭한 식재료가 된다.
빈혈과 피로가 말하는 진실, 때로는 채소보다 ‘고기 한 점’이 보약이다
반대로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고 늘 피곤을 달고 사는 이들에게 ‘채식 위주의 소식’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특히 가임기 여성이나 기력이 떨어진 이들에게 나타나는 철분과 단백질 결핍은 한의학적으로 ‘혈허(血虛)’, 즉 근본적인 에너지원이 고갈된 상태를 의미한다.
메마른 논바닥에 물을 대듯 영양을 꾹꾹 눌러 담아주어야 할 시기이다. 이때는 소고기나 달걀처럼 흡수율이 높은 양질의 단백질이 치료의 일부가 된다. 몸을 따뜻하게 데우고 부족한 혈을 채워주는 식단은 전신의 기력을 회복시키는 ‘보혈(補血)’의 과정이다. 몸이 차고 기운이 없는 이들에게 적절한 육식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처방전이 된다.
문의 (703)942-8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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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