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7일 미네소타에서 발생한 37세 여성 르네 니콜 굿(Renee Nicole Good)의 사망 사건은 단순한 공권력 과잉 논란을 넘어, 미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치명적인 균열을 적나라하게 투사하고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 규명되기도 전에 어느 편에 서느냐가 먼저 결정되는 사회. 이 사건은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정치의 사법화’와 ‘팩트의 진영 내재화’라는 질병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공개된 영상과 현장 분석에 따르면, 당시 굿의 차량은 요원을 향해 돌진하기보다는 회전하며 멀어지는 궤적에 가까웠다. 요원이 차량의 동선에서 안전하게 벗어난 뒤 앞유리와 운전석을 향해 세 발을 발포한 정황도 드러났다.
하지만 연방정부의 고위 인사들은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녀를 “차량을 이용한 국내 테러범”으로 규정했고, ICE 요원의 행위를 “완전한 자기방어”라고 단정 지었다.
반면 미네소타 주정부와 시민사회는 이를 “연방의 초법적 면죄부 부여”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여론 조사 결과는 더욱 절망적이다. 공화당 지지층의 77%는 ‘정당한 발포’라고 믿고, 민주당 지지층의 92%는 ‘부당한 살인’이라고 확신한다. 같은 영상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현실을 소비하고 있는 현실, 사실(Fact)을 삼켜버린 이념의 전쟁터가 되었다.
이 비극이 치안 사건을 넘어 이념 전쟁의 깃발이 된 데에는 세 가지 구조적 원인이 있다.
첫째, ICE(이민세관집행국)는 더 이상 단순한 집행 기관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질서와 국경의 수호자이지만, 누군가에겐 통제되지 않는 국가 폭력의 얼굴이다. 기관에 대한 태도가 곧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이 되어버렸다.
둘째, 연방 요원이 주의 관할권을 무시하고 수사 협조를 거부하는 상황은 제도가 갈등을 중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갈등의 당사자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셋째, CBS와 USATODAY 등 주요 언론이 지적하듯, 이제 미국에는 언론, 수사기관, 법원이 제공하는 ‘공통의 기준’이 사라졌다. 각 진영은 보고 싶은 사실만을 채택하는 ‘신분제 치안’의 시대로 퇴행하고 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비극”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1992년 LA 폭동의 뼈아픈 경험은, 사회적 갈등이 폭발할 때 그 희생양은 언제나 시스템의 가장 약한 고리부터 찾아온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치안 불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공권력의 무제한 발포를 옹호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다. 소수가 다수의 공포에 편승할 때, 그 공포의 칼날은 결국 자신을 향해 돌아오기 때문이다.
우리 한인 사회의 안녕은 특정 정당의 승리가 아니라 법치(Rule of Law), 인권, 그리고 절차적 정의라는 보편적 원칙 위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우리는 “치안은 필요하지만, 법을 넘어서는 치안은 용납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법률 지원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지역 정치에 적극 참여하여, 공정한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감시하는 것이 우리의 생존 전략이다.
1월 19일은 미국의 민권 시대를 열었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날이다. 그는 “증오는 증오를 씻어낼 수 없고 오직 사랑만이 그럴 수 있다”고 외치며, 분열된 사회를 화해와 공존으로 통합하고자 했다.
지금 미국이 잃어가는 것은 민주주의의 형식이 아니라, “조사와 재판을 믿을 수 있다”는 최소한의 신뢰다. 르네 굿 사건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길은 상대를 악마화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법치와 절차적 정의를 복원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이 킹 목사가 꿈꿨던, 피부색이나 신분이 아닌 인격과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한 미국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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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