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 걸들의 무료한 삶을 차가우면서도 동정하고 이해
2025-12-19 (금) 12:00:00
▶ ‘좋은 여자들’ (Les Bonnes Femmes·1960) ★★★★ (5개 만점)
▶ 4명의 여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도시 처녀들의 고독ㆍ천박함 조소
▶ 연민하면서 염세적이고 로맨틱
사랑과 돈과 출세를 갈망하는 파리의 4명의 세일즈 걸들의 무료한 삶을 차가우면서도 동정하고 이해하는 눈으로 포착한 이 영화는 ‘프랑스의 히치콕’이라 불린 클로드 샤브롤의 작품이다.
파리의 가전제품상 점원인 잔(베르나뎃 라퐁)과 자클린(클로딜드 조아노)의 밤나들이로 시작되는데 카메라가 이 두 여인과 두 천박한 남자 마르셀과 알베르와의 데이트를 따라가면서 겨울밤 파리의 스산하고 어둡고 지저분한 거리와 시민들의 모습 그리고 싸구려 술집 풍경 등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앙리 드카에가 흑백으로 찍은 살벌한 밤의 파리가 아름답기 짝이 없다.)
명랑하고 방종한 잔과 내성적인 자클린 그리고 잔의 룸메이트로 가수 지망생인 지넷(스테판 오드랑)과 위선적인 부르좌 약혼자 앙리를 통해 바닥인생을 탈출해보려는 리타(뤼실 성시몽) 등은 손님도 별로 없는 가전제품상에서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하며 권태에 시달린다.
미래가 불안한 이 여인들이 돈과 남자 얘기를 하며 시간을 죽이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 거의 초현실적인 분위기 속에 가차 없이 묘사된다. 이들 여인들 외에 마르셀과 알베르 그리고 음탕한 상점 주인 벨랭과 사형수의 피로 적신 손수건을 부적으로 지니고 있는 상점 경리직원 마담 루이즈 등이 모두 꼭두각시처럼 괴이하다.
4명의 여인들의 진부한 일상(점심 먹고 동물원에 가 짐승들을 상대로 장난하면서 무료를 달래는 이들의 모습이 가소로울 지경이다)은 영화 첫 장면부터 모터사이클을 타고 자클린을 미행하는 가죽점퍼 차림에 콧수염을 한 정체불명의 남자에 의해 의문부호가 달린 가벼운 변주곡의 리듬을 타게 된다. 그리고 순진하고 로맨틱한 자클린은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샤브롤은 고독을 모면하기 위해 사랑을 하는 자클린을 들에 핀 꽃을 꺽듯 잔인하게 처단한다.
샤브롤은 4명의 여인을 내세워 하찮은 도시 처녀들의 고독과 천박함을 경멸하고 조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들을 연민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 특유의 스타일인 작중 인물과 거리를 둔 시각으로 이들의 삶을 클로스 업을 많이 써가면서 사실적이요 냉정하게 포착하는데 작품이 염세적이면서도 로맨틱하다.
타인에게서 친절과 호의를 기대하는 고독을 다룰 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 같은 영화로 대단히 불안하면서도 매력적이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