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다녀 온 성지순례지 튀르키예(Trkiye)는 나의 연약한 믿음 가운데 깊은 감동과 확신을 안겨 주었다. 특히 순례 첫날에 탐방한 성지 카파도키아(Cappadocia)는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수백만 년 전 화산 폭발로 생성되어 마치 외계 행성에 온 듯한 신비로운 기암괴석의 지형 가운데 로마 군병의 눈길을 피해 응회암(Tuff) 깊숙이 지하 8층의 땅굴을 파서 이룬 거대한 장소에 교회를 만들어 예배를 드렸던 그곳은 기적의 피난처였다.
서기 2세기부터 4세기 초, 로마 제국의 극심한 기독교 박해 시기, 그들은 암석들을 쇠붙이로 파내려가 지하 깊은 곳에 도시를 건설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바위산이지만, 그 안에는 수천 명이 숨어 살 수 있는 주거 공간으로 부엌, 학교, 심지어 교회까지 갖춘 신비한 미로가 숨겨져 있었다.
사도 베드로의 전도 활동으로 복음이 일찍 전해졌던 카파도키아 지역의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피해 눈에 띄지 않는 이곳 지하로 숨어들었다. 지상에서의 로마 군병의 감시를 피하고, 혹시 침입자가 생길 경우에는 거대한 원형 돌문(millstone door)을 굴려 입구를 완전히 봉쇄했다.
그들이 지하 깊숙한 곳,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고 죽음까지 이르는 공포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나갔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기원전 7~8세기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비잔틴 시대에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든 지하 도시 데린쿠유(Derinkuyu)와 기원전 수세기부터 시작된 카이마클리(Kaymaklı) 같은 지하 도시는 단순한 피난처를 넘어, 기독교인들의 요새였다. 지상에서 수십 미터에 달하는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 가는 동안 숨 막히는 어둠과 공기에 압도당한 느낌이었다.
이곳에 살았던 이들의 삶은 매일 순교의 문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바위를 뚫어 생명의 길인, 예배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고, 그 견고한 바위산 아래에서 지켰던 나약해 보이지만 결코 굴하지 않았던 그들의 믿음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신앙의 자유와 믿음에 크나큰 유산을 남긴 것이다.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만일 우리 또한 믿음을 위해 모든 것을 잃을 위협에 처한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굳건한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다만 기도하리라.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나를 붙들고 계시는 주님만이 참된 우리의 피난처이며, 우리의 믿음은 오직 주님의 사랑과 약속 위에 세워졌다는 확신과, 좁은 땅굴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던 그들의 믿음처럼, 우리의 삶 또한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작은 등불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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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