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가 밝았다. 달력의 첫 장이 타임스스퀘어의 카운트다운으로 넘어간듯 하지만, 그 종이 한 장에는 한 세대의 눈물과 인내, 그리고 희망이 겹겹이 포개져 있다.
올해는 병오년, 불의 기운을 머금는다는 말의 해, 가만히 서있는 해가 아니고, 초원을 달리고, 버티고, 다시 기상하는 해다. 그것은 곧 미국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첫째로 우리의 떠남은 선택이었으나, 견딤은 숙명이었다. 한인 이민의 출발점은 언제나 떠남에서 시작되었다. 가난을 떠나기 위해, 억압을 떠나기 위해, 혹은 자녀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태어난 조국 땅을 등졌다.
그러나 떠남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국어를 잃는 일이요,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는 일이며, 익숙했던 ‘나 자신’을 낯선 세계에 떠맡기는 일이었다. 미국 땅에 첫발을 디딘 순간,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이곳에서의 삶은 ‘기회의 땅’ 이전에 ‘증명의 땅’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우리의 학위와 경력은 하얀 종이장에 불과했고, 이름조차 발음하기 어려운 소리에 얼굴 색들은 제각각이었다. 여기서 한인 이민자의 대서사는 시작되었다고 본다.
둘째로 침묵 속의 노동이다.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영웅들의 조용한 노동의 연속뿐이요, 그곳이 삶의 현장이었다.
기록되지 않은 영웅들의 불평 대신 묵묵함을 택한 1세대 부모들로 차별 앞에서 분노보다 인내를 먼저 배웠다. 자신의 꿈을 접고 자녀의 꿈이 희망되었던 세대들이다. 그들의 삶은 역사책에 남지 않지만, 한 세대의 교육과 다음 세대의 도약을 가능케 한 보이지 않는 기초석들이 되었다.
셋째로 상처는 기억이다. 무너지지 않은 공동체인 한인 디아스포라는 단지 ‘이주자 집단’이 아니라, 상처를 공유한 공동체다. 인종차별의 벽, 문화적 오해, 1992년 LA 폭동과 같은 집단적 트라우마, 그리고 팬데믹과 증오 범죄라는 시련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반복해서 시험대에 올랐다. 그러나 그때마다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고, 교회가 피난처로, 커뮤니티는 서로의 생명줄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처럼 이민자의 삶은 늘 불안정했지만, 그 불안 속에서 우리의 전통의 두레처럼 공동체라는 집을 지어왔다.
넷째로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이다. 한인 디아스포라는 언제나 간(間)인종적 존재였다. 한국인으로서의 기억과 미국인으로서의 현실, 부모와 자녀 세대의 간언어적 사고,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우리는 줄타기를 해왔다.
그래서 정체성의 혼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를 가로지르는 집단적 질문이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깨닫는다. 이 ‘간(間)의 위치야말로 우리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두 문화를 이해하는 감각, 다중 언어의 사고, 갈등을 중재하는 능력 등은 글로벌 시대에 가장 강점이며 필요한 자산이 되었다.
다섯째로 다음 세대를 향한 책임 있는 서사이다. 이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이 대서사를 어떻게 다음 세대에 건넬 것인가? 자녀 세대는 더 이상 생존만이 목표가 아니라 그들은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희생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희생이 만들어낸 가능성을 정직하게 설명하는 것뿐이다. 병오년의 말은 불을 품고 달린다. 그 불은 파괴가 아니라 정화와 재도약의 불이다. 이제 한인 디아스포라는 ‘견디는 공동체’를 넘어, ‘기여하는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
정치, 교육, 문화, 학문, 시민사회에서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닌 책임 있는 주체로써 말이다. 즉, 우리는 이 땅의 손님이 아니라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동행자임을 이미 충분히 증명해 왔다. 이제는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유산을 남길 것인가?” 그리고 이 대서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선택으로 내일의 문장이 쓰일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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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화/전성결대학장·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