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영의 독서칼럼] 스토너

2025-11-13 (목) 12:00:00 한 영 재미수필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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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Stoner)』는 1965년 출간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성공을 중시하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대학 교수의 묵묵한 삶을 그린 이 작품은 당시 독자들에게 지나치게 밋밋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유럽에서 재출간되면서 ‘숨겨진 걸작’으로 불리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세기 최고의 영미 소설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으며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의 이름을 그대로 제목으로 삼아 미주리 대학을 배경으로 한 평범한 인생의 궤적을 담담히 그린다.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미주리주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농장 일을 도우며 자랐다. 새로운 농법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스무 살 무렵 다소 늦게 콜럼비아에 있는 미주리 대학에 입학한다. 그는 숙식비를 마련하기 위해 친척 농장에서 일을 하며 어렵게 학업을 이어갔지만, 농학 강의는 흥미를 느끼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수업에서 우연히 접한 세익스피어의 문학에 깊이 매료되어 영문학 강의를 듣기 시작한다. 그는 책을 읽는 즐거움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그는 특별한 장래 계획이 없었지만, 그를 눈여겨본 교수가 앞으로 교육자가 될 사람이라며 학문의 길로 이끈다.


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독일군과 싸우기 위해 모두가 군대로 향하던 때였다. 징집을 피하면 자신의 앞날에 불이익이 따를 것을 알면서도 그는 학교에 남기로 결심한다. 8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에서 강의하기 시작했다. 총장의 저택에서 열린 교수 리셉션에서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곧 청혼한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수줍음이 많고, 감정 표현이 서툴렀으며, 형식과 격식을 중시하는 가정에서 자라났다.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르렀지만, 부부 관계는 기대와 달리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성격 차이와 오해로 부부사이가 멀어졌고, 그가 사랑하고 의지했던 딸과의 관계마저 서서히 틀어진다.

스토너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강단을 지켰다. 그러나 타협할 줄 모르는 그는 조교수 이상의 직위로 승진하지 못했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를 또렷이 기억하는 이도 거의 없었다. 학문적 성취가 두드러진 것도 아니었고, 게다가 동료 교수와의 갈등이 그의 삶을 더욱 힘겹게 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을 깨달은 그는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 온 동료에게 처음으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 그리고 대학을 떠나며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작가는 이 과정을 화려한 장식이나 감정의 과장 없이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며, 오히려 스토너의 깊은 외로움과 쓸쓸함을 강하게 독자에게 전달한다.

스토너의 삶에는 화려함도 극적인 사건도 없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끝까지 긴장을 잃지 않게 하는 이유는, 바로 그 평범함 속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간 존재의 진실을 포착하기 때문이다. 그의 일생을 따라가며 “혹시 뒤늦게 반전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특별한 기적 없이 그는 병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생각하게 된다. ‘이런 것이 삶이 아닌가.’

현대 사회는 언제나 성취와 성공을 요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려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일생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간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지만 뜻하지 않게 진로가 정해지기도 하고, 사랑을 모르면서도 결혼을 한다.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모른 채,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 것 같다. 고독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게 사는 거니까.

이 소설을 읽으며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보게 된다.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왔는가. 성공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렇다고 삶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열심히 살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것은 아닐까.

작가 존 윌리엄스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토너는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또 그것에 의미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스토너』는 화려한 성공담이나 극적인 반전 대신 삶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독자로 하여금 자기 삶을 돌아보게 한다. 평범하지만 성실히 살아온 인생이 결코 하찮지 않다는 깨달음, 그것이야말로 『스토너』가 던지는 가장 깊은 울림일 것이다.

<한 영 재미수필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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