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몰락하는 MTV
2025-11-13 (목) 12:00:00
고경석 / 한국일보 기자
최근 미국 음악 방송 MTV는 연내 영국에서 음악 채널 송출을 모두 중단한다고 알렸다. MTV 모회사 파라마운트가 음악만을 내보내는 ‘MTV Music’ ‘MTV 80s’ ‘MTV 90s’ ‘Club MTV’ ‘MTV Live’ 5개 채널 폐쇄를 결정한 것인데 모두 특정 시대나 장르 음악 전문 채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리얼리티 예능 위주의 ‘MTV HD’는 유지하기로 했으니 MTV가 완전히 철수한 것은 아니다. 글로벌 기업이 해외 지사 영업을 축소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지만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사업을 크게 축소할지 모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 1981년 개국한 MTV가 처음 내보낸 곡은 영국 밴드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였다.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는 제목은 세계 음악 산업의 지형도가 뮤직 비디오를 중심으로 바뀔 것이라는 선언에 가까웠다.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가 MTV와 함께 슈퍼스타가 됐다. MTV 등장으로 외양만 그럴싸하고 음악 실력은 빈약한 가수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지만 MTV는 199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 한국판 MTV인 케이블채널 엠넷은 1995년 개국했다. 지금은 CJ ENM이 운영하지만 원래 무역회사인 영유통이 설립했다. 인터넷과 유튜브 등장으로 MTV가 내리막길을 걸을 때 엠넷은 K팝의 성장과 함께 영리하게 살아남았다.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변주하며 히트작들을 양산했다. ‘프로듀스’ 시리즈의 순위 조작으로 위기에 봉착했지만 ‘스트릿 우먼 파이터’와 ‘플래닛’ 시리즈 같은 인기 프로그램으로 기사회생했다.
■ MTV는 덩치만 키웠을 뿐 혁신에 실패해 몰락을 자초했다. 이는 국내 음악 시장에도 반면교사가 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뮤직비디오가 홍보 수단에서 브랜딩 도구로 바뀌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MTV를 꼬집었다. K팝 산업이 미국 팝 시장보다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은 칭찬할 만하지만 산업이 비대해지면서 여기저기서 위험 신호도 감지된다. 모두가 K팝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지금이 오히려 뒤를 돌아봐야 할 때다.
<고경석 / 한국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