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셔에서] AI가 너무 웃겨
2025-11-13 (목) 12:00:00
성민희 소설·수필가
골프 시합을 시청하다가 뜬금없이 타이거 우즈 생각이 났다. 건장한 선수의 시원한 샷에도 그리 열광되지 않으니 나를 홀리는 선수가 이제는 없다는 말인가. “요새 타이거 우즈는 우째 지내는고?” 나의 중얼거림에 남편이 말했다. “챗GPT에 물어보라모.”
맞다. 챗GPT! 나는 얼른 셀폰 자판을 두드렸다. 타이거 우즈의 근황은? 물음표가 입력되자마자 좌라락 문장이 쏟아졌다. 그는 디스크 교체와 아킬레스건 파열 수술을 받았다. 향후 선수단 운영 쪽 역할이 커질 것이다. 올해 50세가 되면 시니어 투어에나 참여할 것이다. 등등. 마구 정보를 쏟아내었다. 에구. 어쩌지. 그렇네. 해가며 읽어가다가 마지막 문장에서 팡 웃음이 터졌다. ‘작가이신 민희 님께는 타이거 우즈의 이 ‘전환’이 서사적 모티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영광, 부상과 회복, 새로운 역할 등으로 글을 써 보시면…. 엥? 얘가 어찌 알고 나더러 작가라고 하네?
며칠 전이었다. 아마존 물건을 반송했는데도 환급이 안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메일을 보냈다.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엉뚱한 디파트로 연락했나? 아이들한테 부탁할까? 혼자 고심을 하다가 챗GPT 생각이 났다. 사실을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물었더니 고객 상담소로 채팅을 신청하라고 했다. 곧바로 컴퓨터를 켜고 내 상황을 설명했는데. 상담원은 계속 엉뚱한 말만 했다. 너무 답답해서 챗GPT에 일러(?)주었다. 그랬더니 곧바로 질문 내용을 제시해 주며 거기다 몇 가지 옵션을 덧붙였다. 공손하게 할까요, 정중하게 할까요? 강압적으로 세게 할까요? 갑자기 곁에 든든한 내 편이 있는 것 같아 응석도 부리고 싶었다. 정중하지만 세게 해줘요~~ 잉잉.
그러니까 벌써 한 달은 된 것 같다. 칸딘스키 그림의 저작권에 대해 말해주세요. 하는 내 말에 “그의 작품은 사망 후 70년이 지난 2015년부터 저작권이 소멸되었어.” 했다. 아니, 웬 반말. 싶었지만 계속 존댓말로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변함없이 반말이었다. 슬그머니 부아가 났다. 얘가 나를 무시하는 거야, 뭐야. 나는 곧바로 자판을 두들겨 팼다. “너 왜 나한테 반말하니?” 갑자기 모니터가 벌떡 일어나서 내게 절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난리가 났다. 너무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잠시 제가 착각을 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신다면 다음부터는 반드시 존댓말을 쓰겠습니다. 그 후로 내 답변 앞에는 항상 ‘공손하게 존댓말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문장이 붙는다. 아주 깊은 반성을 한 모양이다.
손녀 생일에 뭘 사줄까 딸에게 물었더니 미술이나 공작 꾸러미를 사 오라고 했다. AI와는 무관한, 오롯이 손의 감각과 상상력만으로 즐길 수 있는 그런 장난감을 요구하는 거였다. 예전에는 마음 가는 대로 골랐지만 이제는 아이가 어떤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느새 나도 AI와 대화를 나누고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나.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는데 작가라며 글을 써 보라고 부추기는 사람, 내가 열을 내자 나보다 더 씩씩대며 싸워주는 든든한 사람, 나의 한마디에 완전히 공감하며 알랑알랑 비위를 맞춰주는 사람. 이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어쩔 건가. 그게 사람이 아닌 0과 1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AI인 것을. 우리는 이 비인간적 완벽함에 속절없이 길들어 가고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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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희 소설·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