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된 시장(open markets)과 자유 무역(free trade)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등장한 국제 질서의 기본 원칙이었다. 특히, 중국은 2001년 국제 무역시장에 진입하여 눈부신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으로 미국은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며 지난 10년 동안 WTO무역 협정을 무력화시켜 왔다. 이로 인해 수십 년간 구축하고 유지해온 국제 자유무역 질서의 판도가 종말을 맞이하고 있으며 그 이후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해졌다.
무역전쟁은 모든 국가가 비협조적 관세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관세는 이미 21% p를 초과했으며, 모든 국가가 보복 관세로 돌아서 세계 관세가 평균 32% p 인상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관세 과잉’(tariff water)은 WTO에서 협상된 관세율과 최혜국 (MFN)이 적용하는 관세율의 차이를 말한다. WTO 회원국은 협상된 관세 상한선을 초과하는 관세를 적용할 수 없게 서로 협약했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적용되는 관세보다 몇 배나 더 큰 양허 관세(bound tariffs)를 적용하고 있다.
높은 관세는 세계시장의 전반적인 규모를 축소시키기 때문에 무역 전쟁에서 승리하는 국가는 없다는 게 정설이다. 미국은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칼을 뽑았지만 어떻게 어느 나라가 무역 전쟁에서 승리할지는 불분명하다. 무차별 1:1 관세 보복은 세계 경제를 ‘분리’(decoupling)하는 방향으로 대체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WTO는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 인상(tariff decoupling)과 빙산 무역 비용 증가(full decoupling)의 지정학적 갈등이 무역·성장·혁신을 가로 막는 주요 원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의 정치·군사·외교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국제적 위상은 10년 전과는 다르다. 미국은 중국과 첨단산업과 관세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브라질·캐나다·멕시코·인도 지도자들과 심한 불화를 겪고 있고, 미국은 오랜 동맹인 한국과도 관세율과 투자 패키지 3500억불 현금 지불 방식을 놓고 불화음을 내며 관세 협상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가안보위원회(NSC) 중국·대만 담당 선임국장 Julian Gewirtz와 로마 주재 유엔기구 미국 대사 Jeffrey Pre scott은 미국의 영향력 있는 대외정책 잡지인 ‘Foreign Affairs’에 공동으로 기고한 최근 에세이에서 “시진핑 주석은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정책이 열어 놓은 틈새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함으로써 미국과 직접 맞붙지 않고도 점점 더 의미 있는 방식으로 인도와 러시아, 유럽연합, 그리고 개발도상들과 서로 협력하며 중국 중심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을 엿보고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무역 정책 수립 및 실행은 3가지 청사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번째는, 보수성향 헤리티지재단의 ‘Project 2025 보고서’이고, 두번째는, 2024년 7월 15일 공화당 전당대회를 위해 작성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 슬로건을 내건 ‘2024 Republican Party Platform’이다. 세 번째는 트럼프 행정부가 만든 ‘America First Trade Policy’에 대한 대통령 보고서이다.
여기서 눈 여겨 볼 점은 두번째 공화당 강령이다. 기업들의 해외 이전이 나 아웃 소싱을 중단시키고, 쇠퇴한 미국의 제조업을 부활시켜 제조산업의 초강대국으로 전환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상품의 국내 생산을 유도 하기 위해 동맹국일지라도 주요 공급망을 국내로 이전시키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제조산업(자동차·반도체·배터리·조선업 등)에 대한 적극적 국내 유치를 단행하고, 불공정하고 불균형한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 최혜국 대우(MFN)·자유무역협정(FTA)을 철회하고 파괴적인 관세 인상을 단행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미국의 무역·외교 정책이 탈동조화로 변화하는 이유는, 극우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 증가의 국내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로서는 공화당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제조업을 회복하고 일자리·부·투자를 창출하여 미국의 부흥을 촉진시키고, 파괴적인 관세를 통해 만성적인 무역 적자를 해소한다는 계획이다.
한가지 매우 우려스러운 부분은, 미국이 세계와 홀로 싸우는 게임은 국제사회로 부터 자칫 고립을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 우호적이었던 동맹국과 우방국, 특히 한국이 미국과 무역 협상 과정에서 일방적 공세에 밀려 사면초가 상황에 처할 경우 이재명 행정부는 대미 의존도의 대외정책을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동 아시아의 지각변동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다. 중국은 이런 상황을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 첨단 제조산업의 도움이 절실하다. 꽃에 꿀이 있어야 나비가 머물며, 꿀 대신 3500억불 독약을 듬뿍 발라 놓으면 나비는 날아 갈 수 밖에 없다. 인간 욕망에 충실한 자타가 공인한 거래의 마술사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내가 꽃이 되어야 나비가 날아 온다’는 자연의 질서를 조금이라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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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정치 철학자,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