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맞습니다, 다만(Yes, But)
2025-10-23 (목) 12:00:00
이영태 / 한국일보 논설위원
직장생활에서 상사에게 ‘노(No)’라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 한두 번이면 모를까, ‘No’만 되풀이하면 눈밖에 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예스맨이 될 수도 없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잘 하려면 상사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No’를 말하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들 한다. 그게 바로 ‘YB 화법’, 즉 ‘예스 벗(Yes But·맞다, 다만)’이다. 상대 의견을 존중하고 공감을 표시하되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다.
■ ’YB 화법’은 협상에서도 중요하다. 미국 통상 수장인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7월말 관세협상 당시 우리 협상단이 백악관에 초대받기 직전 ‘협상 과외’를 해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맞춤 대화법. 우리 협상단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이미 한국 시장이 99.7% 개방됐다”는 점을 강조하자, 러트닉은 “절대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했단다. “일단 공감의 취지로 ‘네(Yes)’를 말한 뒤 ‘그러나(but)’로 이어가라”는 조언이었다.
■ 퇴임 후 부쩍 견해 표시가 잦아진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소셜미디어에 ‘협상의 법칙’이란 글을 올렸다. ‘낫 비코즈(Not Because·이래서 안 된다)’가 아니라 ‘예스 벗’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공통적인 것을 확인하여 이견을 좁히고, 이견을 해소할 근거를 공통적인 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일방이 결단을 내리는 것보다 나은 경우가 많다고 했다.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여당, ‘안 되는 이유’만을 찾는 사법부를 모두 비판한 것일 테다.
■ 세계적 협상 교육기관인 ’하버드 협상 프로젝트’는 협상을 ‘조건부 Yes’를 설계하는 과정이라고 진단한다.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국제협상 무대에서도, 노사협상에도, 조직 회의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회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는 요즘은 더더욱 그렇다. ‘Yes’는 상대 체면을 세워주고, ‘But’은 자신의 이익을 지킨다는 점을 모두 상기했으면 한다. 그래야 균형을 찾는다.
<이영태 / 한국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