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서로 일하며 부자 상사에 충성하는 동생… 혹시 가스라이팅?

2025-09-05 (금) 12:00:00 라제기 영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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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5부작 ‘사이렌이 노래할 때’

▶ ‘돈 쓰는 게 제일 쉬운’ 사람들의 세계

비서로 일하며 부자 상사에 충성하는 동생… 혹시 가스라이팅?

시몬(왼쪽)은 미카엘라의 비서로 하루 종일 상사를 보좌하며 화려한 삶을 산다. 언니 데번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넷플릭스 제공]

데번(메건 페이히)은 울고 싶은 상황이다. 대학 중퇴 후 일정한 직장이 없다. 아버지는 치매 진단을 받았다. 데번은 알코올중독증을 이겨내려 했으나 홧김에 술을 마신 후 음주운전을 저질렀다. 자신이 희생하며 키운 여동생 시몬(밀리 올콕)은 여러 번 문자를 보내도 응답 한번 없다. 화가 난 데번은 시몬이 일하고 있는 곳을 찾아간다.

시몬은 부잣집에서 일한다. 보통 부자가 아니다. 시몬의 상사인 미카엘라(줄리앤 무어)와 피터(케빈 베이컨) 부부는 섬에 대저택을 짓고 영주처럼 산다. 시몬은 비서로서 미카엘라가 일어나서부터 잠들 때까지(때로는 잠이 깬 새벽에도) 모든 일을 돕는다. 시몬이 없으면 미카엘라는 화장실조차 못 갈 것처럼 보인다. 언니가 애타게 ‘구조 신호’를 보내도 응답하지 못할 수밖에.

데번이 찾아가자 시몬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미카엘라 역시 마뜩잖은 표정이다. 시몬과 미카엘라는 상사와 부하직원 이상의 관계로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미카엘라는 사이비종교 교주 같다. 피터의 전처와 아이들과 관련해 고약한 소문이 나돌기도 한다. 투사 기질이 강한 데번이 그냥 넘어갈 리 없다. 그는 나름 동생을 위해 ‘구출 작전‘에 나선다. 시몬은 전혀 원치 않고, 미카엘라는 ‘방해 공작’으로 맞선다.


데번의 추측처럼 시몬은 미카엘라에게 심리적 지배(가스라이팅)를 당하고 있는 걸까. 미카엘라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인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악인일까. 데번이 의문을 품을수록 이야기는 공포물 또는 스릴러물의 외관을 띤다. 하지만 이 드라마, 블랙 코미디다.

데번과 시몬은 어두운 과거를 보냈다. 무책임한 부모 때문이다. 자매는 같은 가정환경에서 자랐으나 가치관은 다르다. 감성적이고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데번과 달리 시몬은 이성적이며 야망이 크다. 데번은 동생이 미카엘라 때문에 비뚤어진 삶을 산다고 생각하나 시몬은 부자를 받들며 부자처럼 살고 싶다.

미카엘라의 권력은 엄청나다. 노예 부리듯 해도 집안 일꾼들은 불평 한 마디 하지 않는다. 시몬은 미카엘라를 등에 업고 사람들을 착취한다. 일꾼들이 시몬의 추락과 불행을 바랄 수밖에.

“돈 쓰는 게 제일 쉬운”(피터) 부자들의 세계는 종종 요지경이다. 미카엘라의 이웃으로 시몬과 비밀 연애(미카엘라가 싫어해서다)하는 이선은 무능력하고 눈치가 없는 인물이나 재력 덕분에 사람들의 존중을 받는다. 미카엘라는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한다. 매사 점잖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피터라고 다를까. 사람들을 돈으로 쥐고 흔드는 것처럼 보이는 미카엘라를 지배하는 이는 결국 피터다.

<라제기 영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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