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의 일대기에 대한 뮤지컬 ‘영웅’에 나오는 앙상블 노래중에 ‘누가 죄인인가?’는 대한민국 사람이 들으면 누구나 다 가슴이 뭉클할 수 밖에 없는 노래이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재판관들에 의해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죄인으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누가 죄인인가?’의 노래에서는 안중근은 그 죄인은 자신이 아니라 조선을 침탈하고, 조선의 자주국과 자유를 찬탈한 일본이 죄인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일본은 “대한의 국모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대한의 황제를 폭력으로 폐위시킨 죄. 을사늑약과 정미늑약을 강제로 체결케한 죄. 무고한 대한의 사람들을 대량 학살한 죄.”라고 나열하고 있다.
살다보면 누가 잘했는지 누가 못했는지, 누가 의인인지, 악인인지 분간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 판단은 그 당시에, 그 상황에서는 잘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서로가 자신들이 의인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거창하게 역사적인 판단이라고 하는데 그 역사적인 판단은 세월이 한참 흐른 다음에 판단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 때 그 세월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중학생이 타임즈에 나오는 시사를 해석하는 것처럼 힘들고 난해한 것이다.
성경에서도 야곱의 아들 요셉이 주인이었던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는 것을 뿌리쳤지만 그 아내는 오히려 요셉에게 누명을 씌워 요즘말로 말하면 폭행을 시도했다고 해서 권력자 앞에서 힘없는 종이었던 요셉은 3년이나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후 결국 요셉은 그 어느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가장 비극적으로 죽은 왕세자였던 사도세자의 죽음은 당시에는 그 어느 누구도 입밖에 낼 수 없는 금기사건이었다. 왕이었던 아버지 영조가 아들 왕세자였던 사도세자를 쌀뒤주에 가두어 죽였다. 누가 죄인인가? 아버지가 죄인인가? 아들이 죄인인가? 누가 더 죄인인가?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사도세자의 이름을 ‘장헌’이라고 바꾸고 경기도 양주에 있던 묘역을 화성으로 옮기고 그곳을 ‘현륭원’이라 명하였다.
그 어떤 것이라고 당시에는 올바른 일이라도 나중에는 그릇된 일이 되기도 하고, 당시에 그릇된 일로 알려진 것이 나중에는 올바른 일이었다고 판명되기도 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 마음에 항상 떠 올리는 말은 ‘누가 죄인인가?’이다. 그 죄인은 누구이며, 무엇을 했는가?이다.
조선시대에 황희 정승은 사람의 뜻과 행동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정승으로 유명하다.
황희 정승이 어느 날 누런 소와 검정소 두 마리를 부리면서 논에서 모내기하는 농부가 있어 그 농부에게 “누렁소와 검정소 중에 누가 더 일을 잘하느냐?”고 물었다. 그 농부는 멀리 있다가 가까이 와서 황희 정승 귀에 “누렁소가 더 잘하오!” 속삭였다. 황희는 그 농부에게 거기서 말을 하면 되지 왜 귓속말로 하느냐? 고 물었더니 그 농부는 두 소가 다 힘들어 하고 있는데 한 쪽 소가 잘한다고 하면 다른 소는 기분이 나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그 때부터 황희 정승은 남의 단점은 입 밖에도 내지 않았다고 한다.
황희같이 옳고 그름에 대해서 입을 열지 않으면 답답하기도 하고, 변화와 개혁을 하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남의 잘못을 말하면서 자기는 살피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에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성경에서 유대인 지도자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예수님앞에 데려와서는 유대인의 율법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예수님께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요한복음 8:7).
이곳 저곳에서 “누가 죄인인가?”목청을 높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정말 누가 죄인인가? 아니 누가 더 죄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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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