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호수위에 뜬 달 그림자

2025-02-21 (금) 06: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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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창구 클락스빌, MD

유튜브를 보면 희한한 세상들이 손바닥에 있다. 또한 별별재주를 가진 사람들을 일상으로 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중국사람으로 추정되는데 큰 나무 토막을 작업대에 올려 놓고나서 마구 톱질을 하고 끌과 망치로 나무를 찍어낸다. 처음에는 무얼하려고 저러나 싶는데 점차 거대하고 섬세한 목각작품을 만들어 낸다. 일반인들 눈에는 단순한 나무토막에 불과 하지만 장인의 눈에는 그 나무 세세한 부분까지도 파내서 버릴 것과 살려야 될 부분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흰 종이 위에 붓이 가는 곳만 보면 뭘 그리려고 하는 지 알 수가 없지만 이미 마음속에 대체적인 구도가 정해진 상태에서 순차적으로 작업을 한다.


글도 같다. 소설가들이 소설을 쓸때도 이미 작품의 걸개가 끝나고 나서 사건과 인물들을 어떻게 연결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작업을 해 나간다. 글 제목만 봐서는 엉뚱하게 오해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과 지혜를 혜안(慧眼)이라고 한다. 혜안은 불교의 오안(五眼)중의 하나다.


법안(法眼), 불안(佛眼), 육안(肉眼), 천안(天眼), 그리고 혜안(慧眼)이다. 적어도 나라와 민족에게는 국민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혜안이 있는 지도자가 꼭 필요한 이유다.
12.3 비상계엄으로 난리가 나고 헌법재판소에서 이에 대한 판결이 진행되는 와중이기에 가급적 평론을 자제하려고 하지만 전국민들이 실시간 육안으로 봤던 상황조차도 너저분하게 재판이라고 진행하면서 갑론을박 하고 있다. 글쎄 사안이 사안인지라 당사자들에게는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마당에 무슨 말인들 못할까만 보고 있을 수록 세살짜리도 알 수 있는 ‘참과 거짓’이 분명한 걸 묻고 되묻고 하는 사이에 국가(國家)는 뭐가 되고 있는가, 결과가 너무나 뻔할 내용을 전국민이 3개월이 다 되도록 지켜보고만 있는 것이다.

일반 직장인들도 상사와의 사소한 술자리에서 지나가는 말이라도 ‘지시’라고 생각되면 돌아서서 메모를 한다든지해서 반드시 명심하고 이행하는 것이 기본중의 기본이다. 하물며 국가 최고 권력기관인 대통령과 국무위원, 군 지휘관들이 ‘네가 했니, 안했니?’ 하면서 다투고 있다. 짐작은 했지만 도대체 국사(國事)를 어떻게 하고 있었을 지 궁금증이 풀리는 적나라한 장면들이다.


지켜보는 관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이번 비상계엄 관계 당사자들은 딱 두가지로 갈린다. 국가를 위한 증언인지, 내가 살고자 하는 증언인지가 그것이다. 죄와 벌에 대한 공포는 누구에게나 있다.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대통령을 비롯한 대부분이 혼자 살겠다고 자기들끼리도 서로에게 미루고, 변명 회피하고 있는 반면에 비록 소수이긴하지만 자신의 불이익과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사실대로 굽힘없이 나라의 장래를 위한 소신과 신념을 증언하는 의인(義人)들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속오계(世俗五戒)나 성리학에서 대대로 내려온 선비정신과 공복(公㒒)들의 제일의 덕목은 선공후사(先公後私)다.

어쩌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 하나로 대통령까지 된 위인이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무엇인지를 의심하지도 묻지도 않은 결과, 오늘날과 같은 상상하지 못한 결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추측건데 ‘내가 본래 왕(王)인데 누구에게 충성하고 말고가 있겠나,‘오로지 나에게만 충성하는 자들’을 추리는 것이 국정(國政)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위를 전제로 뒤집어 보면 지금 하는 행동들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현실은 몇 백년 전의 왕정이 아니다. 그러니 헌법재판정에 피청구인으로 앉아서 ‘나는 헌법위에 있는데 뭘 위반하고 말고가 있겠나, ‘호수위에 뜬 달 그림자’ 같은 일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오히려 국민들이 화끈거려서 재판중계를 못볼 지경이다.

2017년 박근혜 탄핵의 경우는 이에 비교 자체도 못되는 일이었다. 그 당시 칼자루를 윤석열 피청구인이 휘둘렀다. 보다 못한 보수논객들마저도 박정희, 전두환과 그들을 따랐던 군부들은 나라와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이라도 지켰다는 하소연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100일이 지나고 탈탈 털리고 나면 이제 한줌도 안될 희귀한 사람들이 ‘호수위의 달 그림자’를 쫓다가 차가운 호수에 빠지고 나서야 정신이 들려나, 나라의 운명이 마치 ‘호수위에 뜬 달그림자’ 처럼 고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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