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거룩한 전쟁?

2025-02-20 (목) 07:51:50 옥승룡 목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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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와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이름은 같다. 젤렌스키의 이름은 볼로디미르(Volodymyr)이고 푸틴의 이름은 블라디미르(Vladmir)인데 볼로디미르는 블라디미르의 우크라이나식 이름이다. 두 사람의 이름은 약 천년 전 현재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지역을 점령했던 “위대한 블라디미르 (Vladmir the Great)”의 이름에서 왔다.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의 “위대한 왕자”로도 불린 블라디미르는 그의 왕국을 기독교화하고 모든 이방 신전을 교회로 바꾸라는 칙령을 내렸다. 988년에는 키이우 주민들에게 합동 세례를 받으라고 명령했는데 러시아는 이 사건을 러시아 정교의 기원으로 본다. 러시아의 문화는 정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 사건은 러시아 문화의 기원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래서 러시아 정교의 수장인 키릴 (Kirill) 주교는 “우리는 키이우를 ‘모든 러시아 도시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키이우는 예루살렘과 같다 … 그래서 어떠한 경우에도 이 역사적, 영적 관계를 포기할 수 없다”고 했으며 전쟁에 나가는 병사들에게 “조국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면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했다. 키릴 주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배교자를 처단하기 위한 거룩한 전쟁으로 정의하며 푸틴을 적극 지지한다.

또한 푸틴의 “러시아 세계”에서 모스크바는 공동 정치 중심지이며 키이우는 공동 영적 중심지이고 키릴은 공동 주교이고 자신은 공동 대통령이다. 우크라이나는 푸틴의 세계관에서도 아주 중요한 곳인 것이다. 거기에 더해 소련의 붕괴가 “20세기의 가장 큰 지정학적 재난”이라고 푸틴은 생각하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푸틴이 다시 침공할 것을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염려한다.


그런데 30여년 전에 러시아에 영적 부흥의 조짐이 있었다. 만일 그 부흥이 지속되었다면, 백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참혹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소련이 붕괴되기 직전인 1991년 10월에 19명의 미국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소련의 초청을 받았다. 기독교를 강하게 박해했던 소련에서 미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을 초청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초대받은 기독교 지도자들은 소련 의회(Supreme Soviet), KGB, 언론과 학계등 당시 소련의 지도급 인사들과 면담을 했다. 소련 대통령이었던 고르바쵸프도 만났다. 당시 소련 의회 의장이었던 Konstantin Lubenchenko는 “우리는 성경이 무척 필요합니다…오늘밤 당신들과의 만남이 두 국가 대통령들의 핵무기를 없애기 위한 회담보다 소련의 장기 안보를 위해 더 중요합니다”라고 했다. KGB 부국장이었던 Nikolai Stolyarov 장군은 “우리는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데 태만했습니다…사람들이 믿음으로 돌아가는 진정한 회개가 있기 전에는 정치적 문제들이 해결될 수 없습니다”고 했고 그 모임에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소련 공산당 기관지였던 프라우다(Pravda)의 편집인들과의 만남에서는 종교란 기고자를 추천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으며 러시아에는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하다는 말도 들었다. 고르바쵸프 대통령은 “오늘 우리의 주요 당면 과제는 개개인의 내면 세계를 존중하고 도덕성을 강화시키면서 그들의 영성을 높이는 일입니다”라고 했다.

당시 서방 세계에서는 소련의 위기는 정치적, 경제적 문제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소련의 지도자들은 도덕적, 영적 문제가 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진단을 내린 것이다. 러시아 교사 중 25퍼센트 만이 경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설문 조사에서 응답했으며 새로운 도덕적 가치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원하면 하나님은 그 곳으로 가신다. 그러나 하나님을 받아들이도록 한 개인이나 국가를 강요하시지는 않는다. 소련이 붕괴될 때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로 향한 강력한 끌림이 있었다. 그러나 푸틴은 러시아 사람들의 도덕적, 영적 각성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참혹한 전쟁까지 일으켰다.

한국에서 비상 계엄 사태가 일어난 직후 천주교 주교회의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서 계엄을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그런데 지금은 일부 교회들이 주축이 되어 전국 곳곳에서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비상 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 문제를 놓고 한국 기독교계도 분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현재 우리 조국이 겪고 있는 분열과 고통은 정치적, 이념적 차이에 더해서 근본적으로는 영적 문제 때문은 아닌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탄핵 찬성”, “탄핵 반대”를 외치기 전에 “영적으로 각성해야 한다”, “회개해야 한다”를 먼저 외치게 되길 소망해 본다.

<옥승룡 목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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