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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뭐 볼까 OTT] “아버지가 바람을 피운다” 1970년대 도쿄 배경 네 자매 이야기

2025-01-24 (금) 12:00:00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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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넷플릭스 7부작 ‘아수라처럼’

▶ ‘나오키상 수상’ 무코다 쿠니코 각본, 46년 만에 리메이크

[주말 뭐 볼까 OTT] “아버지가 바람을 피운다” 1970년대 도쿄 배경 네 자매 이야기

네 자매 츠나코(미야자와 리에·왼쪽부터), 사키코(히로세 스즈), 마키코(오노 마치코), 타키코(아오이 유우)는 둘째 마키코의 남편의 표현대로 겉으로는 인의예지신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험담을 좋아하는 아수라를 닮았다. [넷플릭스 제공]

아수라처럼’은 1980년대 일본 드라마의 전성기를 이끈 동명 시리즈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나오키상 수상작가이자 1970년대 대표적인 일본 TV 드라마 작가 무코다 쿠니코 각본의 드라마로, 영화와 연극으로도 제작되었다. 일본 드라마의 부활을 겨낭하며‘아수라처럼’을 넷플릭스 시리즈로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선보인 이는‘가족’이라는 주제에 천착해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다. 영화‘아무도 모른다’‘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바닷마을 다이어리’‘어느 가족’‘브로커’‘괴물’ 등 세계적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에 열광한다면 만족할 만할 넷플릭스 드라마다.

1979년 도쿄, 서로 다른 삶을 사는 네 자매가 나이 든 아버지의 불륜을 알게 되고, 이를 계기로 행복한 얼굴 아래 억눌려 있던 각자의 감정들이 서로 분출한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꽃꽂이 강사로 일하는 큰 딸 ‘츠나코’ 역은 미야자와 리에, 중학생 남매를 키우고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인 둘째 딸 ‘마키코’ 역은 오노 마치코가 맡았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셋째 딸 ‘타키코’는 아오이 유우, 무명 복서와 사랑을 키우는 막내 딸 ‘사키코’ 역은 히로세 스즈가 연기했다. 스타성과 연기력을 모두 갖춘 이 시대 일본의 대표 여배우들이 총출동했다. 게다가 일본의 국민배우 중 하나인 쿠니무라 준이 용서받지 못할 불륜을 저질렀음에도 미워할 수 없는 아버지 코타로 타케자와를 연기하고 헌신적인 어머니 후지는 마츠자카 케이코가 등장한다. 마츠자카 케이코는 한경자로 불리는 한국계 일본인으로 일본 노년층에게는 ‘마음 속 연인’으로 간직된 배우다.

‘아수라’는 네 자매를 통해 4인4색의 사랑을 보여준다. 타케자와 집안은 네 자매지만, 관혼상제가 아니면 좀처럼 모두가 모이는 일이 없다. 그러나 1979년 겨울, 셋째 딸 타키코의 갑작스런 부름으로 오랜만에 네 자매가 모인다. 70세를 맞이하는 아버지 코타로에게 불륜녀와 아들이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화목남’(화요일과 목요일 이틀 출근하는 남자)이라 부르던 아버지가 사실은 바람을 피고 있었음은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타키코가 고용한 탐정의 사진에는 모르는 여성과 아이와 찍힌 아버지의 모습이 있었다. 어머니 후지는 절대 모르게 하자고 약속하는 자매들. 이 사건을 계기로, 언뜻 보기에는 평화스러웠던 여자들이 각각 안고 있던 일상의 이런저런 사건이 하나 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마키코가 아버지 애인의 집 앞에 가자, 그 앞에 아연하게 문을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있었다. 어머니는 어느 틈에 알아차린 것일까.

이 작품은 지난 2003년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에 의해 ‘아수라’(Like Asura)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제목 ‘아수라’는 표면적으로는 인의예지신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는 의심 강하고 사실을 왜곡해 타인의 험담을 해대 말다툼의 상징이 된 인도 민족 신을 말한다. 무코다 쿠니코 작가는 여성을 아수라로 비유하면서 그 속에 존재하는 진짜 가족의 모습과 부모 자식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은 작품이다. 마치 아수라처럼 본심을 부딪혀가며 험담을 하고 서로를 질투하거나 미워하지만, 그 저변에는 가족을 배려하는 따뜻한 감정이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시 부천국제영화제 출품작의 소개글을 쓴 황의진씨는 “나이든 어머니의 마음속에도 아수라가 살고 있는 것일까”라는 표현으로 아수라를 설명한다. 마키코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쇼크로 쓰러져버린 어머니.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어머니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외톨이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조금 복잡한 마음으로 안아주며 지켜보는 네 자매들. 우여곡절이 지나가고, 타케자와 집안의 거실에서 담소를 나누는 모두에게, 각각의 인생의 새로운 계절이 찾아오리라는 기대감으로 끝난다.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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