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2025-01-08 (수) 07:42:52 박남태 한국 해군 대령(예), 정치학 박사, 조지 메이슨 대학 방문학자
크게 작게
지미 카터 전 미국 39대 대통령이 12월 29일 향년 100세로 서거하셨다. 나는 그분에게 한국 안보에 기여해준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나아가 그분이 미국을 넘어서 인류에 남긴 소중한 가치와 유산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나는 그분을 2007년 7월에 그의 고향인 Georgia 주 Plains에서 만났다. 당시 나는 한국 해군 소령으로 Texas A&M 대학에 국제관계 박사과정 유학생이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박사과정 중에 북한 핵문제를 연구하면서 부터이다. 사실, 카터 전 대통령 재임시기에는 한국의 인권 탄압 문제 제기 등으로 당시 박정희 정부와 마찰을 빚었었다. 그러나 그분은 퇴임 후 1993년 북한 1차 핵위기의 타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당시 북한은 핵개발을 위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이를 막으려는 클린턴 행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다양한 외교적 시도가 결실을 맺지 못하면서,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 정밀타격 등 군사적 방안을 심각하게 고려하였으며, 따라서 한반도의 안보는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때 카터 전 대통령은 자원하여 방북을 요청했고, 1994년 6월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과의 담판을 통해 위기가 해소되었다. 이후에도 카터 전 대통령은 2010년 8월, 북한에 억류중인 미국인의 석방을 위해서 다시 북한을 방문했고, 이듬해 2011년에는 북한의 초청으로 북한의 인도적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서 재 방문하게 되었다.

카터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에 한반도 평화뿐 아니라, 1994년 아이티 사태 등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적극적인 역할로 전쟁을 막은 것을 보면서 존경하게 되었다. 카터 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나의 국제 정치에 대한 연구도 한국을 더 평화롭게 하고, 나아가 인류사회의 평화에 이바지 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2007년 봄, 나의 박사과정 논문이 통과되고 한국 해군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 되었다. 아내를 설득해서 한국사람들이 미국에서 꼭 봐야하는 나이아가라 폭포와 그랜드 캐년 관광을 대신해서 우리 가족은Georgia 주 Plains로 향했다. 카터 전 대통령의 고향 교회(Maranatha Baptist Church in Plains, Georgia)의 주일 예배가 끝나면, 잠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당일 예배 때 인상 깊었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몸을 맡기라는 시범으로 목사님이 카터 대통령에게 뒤에서 잡아 줄 테니 뒤로 몸을 뉘어보라고 요청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웃으시며 주저 없이 몸을 뒤로 눕혔고, 목사님은 그분의 몸을 아슬아슬 하게 잡아 주었다. 우리를 포함한 참석한 회중이 “와~우!”하고 탄성을 울렸다.

예배가 끝나고 우리 가족을 포함해서 미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대통령 부부와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서 교회 앞 잔디 밭에 긴 줄을 섰다. 대통령과 영부인이 우리가족에게로 오셨다. 사진을 찍는 짧은 순간이지만, 나는 카터 전 대통령에게 우리 가족을 간단히 소개하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나는 Texas A&M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한국 해군사관학교 출신 해군 소령이다. 당신의 한국에 대한 도움에 감사하다.” 고, 그분은 “당신이 한국 현역 해군 장교라고? 박사학위 마친 것 축하하고, 한국에 잘 귀국하기 바란다”라고 해주셨다.

나는 2007년에 귀국하여 해군에 복무하면서 가끔씩 전해지는 카터 전 대통령의 소식을 들었으며, 언젠가 다시 그분을 만나 뵙기를 고대했다. 2021년 군에서 제대하고 가족과 함께 다시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아쉽게도 카터 전 대통령을 다시 뵙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 글을 써서 아쉬움을 달래고, 카터 전 대통령께서 한국의 평화에 기여해주신 것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싶었다. 나아가 그분의 미국을 넘어 인류 사회를 향한 사랑, 헌신, 열정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보고자 한다.

<박남태 한국 해군 대령(예), 정치학 박사, 조지 메이슨 대학 방문학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