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00세 시대에서 고령사회의 새로운 풍속도가 펼쳐지고 있다. 활기찬 60대와 70대, 그 이상의 80대 나이에 은퇴해 노후를 즐기기보다 당당하게 일하며 활기가 넘친다. 이전의 직장 생활이나 전문직 활동을 마치고, 새롭게 재취업해 ‘제2막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노인’이라 불리기보다는 ‘새로 맞이한 중년’이라고 불리길 원한다. 이른바 ‘新중년’ 시대다. ‘액티브 시니어’로 활기찬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난 요즘, 시니어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100세 시대’에 제2막 인생의 활기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퇴직→재취업→은퇴→다시 취업한 간호사 정송자 씨
“80세에 일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죠”
존스합킨스 대학병원과 메드스타 종합병원에서 30년 이상 간호사로 재직했던 정송자(80, 사진) 씨는 68세에 퇴직했다가 로리엔 요양원에 재취업한 뒤 코로나 때 건강상의 이유로 다시 은퇴했다. 하지만 정 씨는 삶의 의미를 다시 찾고자 79세가 된 지난해 어시스턴트 리빙의 한인 환자들을 위해 간호사로 복귀해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어시스턴트 리빙에서 가장 노장 간호사로 경험이 많은 정송자 씨는 “정신적, 육체적 건강만 허락한다면, 사회에 나가 일을 하는 것이 삶의 활력도 찾을 수 있고 내 존재의 의미도 느낄 수 있다”며 “일주일에 하루만 나가는데 한인 노인들이 한국어 하는 간호사라고 반기며 이것저것 물어보고 친숙하게 대할 때 도움을 주면서 참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 씨는 “점점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80대까지 경제활동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고 나이가 들어 활기 있고 즐거운 하루하루가 축적되면서 건강을 되찾은 사례도 많다”며 “은퇴 후 삶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재취업에 적극 도전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노인아파트 풀타임 한식 요리사 재취업 70대 수지 유 씨
“은퇴 후 막막했던 삶, 이젠 활기가 넘쳐요”
1982년 도미해 남편과 함께 캐리 아웃, 스낵바, 아이스크림 가게, 델리 등 각종 요식업을 수십년 동안 운영하던 수지 유(72, 사진) 씨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입은 사업체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유 씨는 “70대에 은퇴할 생각도 있었지만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노력했다”며 “올해 한국일보에 한인노인아파트 골든리빙에서 한식 요리사를 찾는다는 광고를 보고 적지 않은 나이지만 용기를 내서 이력서를 내고 도전했다”고 밝혔다.
풀타임 한식 요리사로 취직한 유 씨는 “‘한식 요리’는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됐다”며 “날마다 할 일이 있고, 아침에 일어나면 갈 곳이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말했다.
유 씨는 “아침부터 일해도 피곤한 줄도 모르고, 일상에 활기가 넘쳐나 제2의 인생을 사는 기분이랄까”라며 “바쁘고 재미있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이것이 바로 일을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웃음을 지었다.
◆박춘근 씨, 은퇴 후 선교사·시큐리티 가드로
“무료한 삶, 활기도 건강도 되찾았죠”
앤아룬델카운티 하노버에 거주하는 박춘근(80, 사진) 씨는 퇴직 후 시니어 선교사로 임명받아 봉사도 하고, 시큐리티 가드를 하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경험해보지 못한 시큐리티 가드 활동으로 퇴직 후 삶에 변화가 생겼다.
1978년 주재원 연수 차 시애틀 땅을 밟은 박 씨는 3년 연수를 마치고 워싱턴 DC로 이주해 레스토랑을 30여 년 경영하다가 2017년 73세에 사업체를 정리하고 은퇴했다. 그는 27년간 시무한 빌립보교회에서 선교사로 임명받고, 2018년 워싱턴세선선교학교를 설립, 교장으로 시니어 선교사 배출에 힘쓰며 빌립보문화교육원 교장으로도 섬기고 있다. 또 저녁과 늦은 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시큐리티 가드로 그 어느 때보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며 퇴직 전보다 더 신나는 삶을 살고 있다.
박춘근 씨는 “삶에서 매우 큰 비중이었던 직장이 사라졌지만, 선교사, 시큐리티 가드 등으로 활동하며 사회 구성원으로 여전히 의미 있는 존재란 걸 확인받고 있다”며 “퇴직 후 남들처럼 여행도 하고 운동도 해보았으나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무료함이 밀려왔는데, 다시 일하게 됨으로써 하루하루가 지겨울 틈이 없어 건강에도 좋고 용돈도 벌 수 있어서 매우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오후 5시에서 새벽 1시까지 시큐리티 가드로 병원, 정부아파트, 학교 등을 순찰 돈다”며 “24시간을 내 마음대로 나누어서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살다 보니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라며 미소를 지었다.
시니어들과 보드 게임을 하고 있는 김정자 강사(가운데).
◆교편 접고 노인 액티비티 강사로 뛰는 김정자 씨
“7-80대도 성장할 땐 늙지 않아”
한국에서 교편을 잡으며 학생을 가르쳤던 김정자(74) 씨는 40대 후반부터 70세가 넘은 현재까지 20여 년간 너싱홈, 요양병원 등에서 노인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담당하는 액티비티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정자 씨는 “미국으로 이주한 후 신학을 공부하게 됐던 것이 어르신들을 섬기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너싱홈에서 일을 시작한 4, 50대에는 어르신들을 섬기는 것이 힘들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한인 병동에서 매일 예배와 찬양. 체조 및 운동 등으로 어르신들을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고 말했다.
김 씨는 “어르신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보내드리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이곳이 천국이다’라는 생각까지 든다”며 “꾸준한 탐구심을 갖고 공부하며 사명감을 갖고 남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뜻깊은지 모른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7-80대도 성장할 땐 늙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100세 시대인만큼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을 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다 멋있는 노년의 삶을 즐기면서 파이팅합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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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희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