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 리스트(bucket list)란 죽기 전에 꼭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은 것들을 정리한 목록으로 ‘소망 목록’이라 부르기도 한다. 일반적인 의미의 버킷 리스트는 유명한 장소들 여행하기, 맛있고 비싼 고급 음식 먹어보기, 예쁘고 비싼 옷 입어보기 등 ‘특정 기회에 혹은 큰 맘 먹고 해보고 싶은 목록’ 정도로 쓰이고 있다. 영화 ‘버킷 리스트’에 나오는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살면서 한 일들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들”이라는 메시지처럼 눈부신 청춘을 거쳐 중년을 지나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워싱턴 지역 3인에게서 잘 사는 법, ‘인생 버킷 리스트’를 들어본다.
▲여행·독서…길 위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는다 / 심재훈 씨(60대, 저먼타운)
시인이며 소설가인 심재훈 씨는 지난 11월 말 네팔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실컷 눈길을 걷다가 지쳐서 돌아왔다. 서울에 들러 1주일 머문 후 12월 중순 워싱턴에 귀환했다.
몇 년전에 이어 작년에도 자동차로 ‘미 대륙횡단’을 또 했다. 그가 여행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가끔 고독해지고 싶을 때가 있다. 물결처럼 사무치는 고독을 즐기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길 위에서 침묵하며 달리다 보면 삶의 여정 속에서 잃어버린 참된 나를 조금은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어떤 풍경과 마주하기 위하여 길을 향해 간다.”
그는 최근의 여행에 대해 “안나푸르나 트레킹 중 가장 높은 언덕 5,416미터의 토롱나패스의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깊은 심호흡을 했다. 그렇게 가볍고 행복해져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의 ‘소망목록’ 중 첫째는 신(神)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것. “지금까지의 삶을 뒤돌아보면 평화없이 자기중심적 삶의 모습이다. 이제는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가치중심적 삶으로 변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지금보다 더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어린왕자의 마음처럼 순수함으로 돌아 갈 수는 없겠지만 행동이나 언어가 더 이상 억지를 부리고 멋을 내려는 어리석고 부자연스러워지지 않고 싶다.
세번째는 열심히 공부해서 노자와 장자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것. 인간이 되는 법을 배우는 장자의 호학(好學)과 자연이 되는 법을 배우는 노자의 절학(絶學)에 한 발짝이라도 다가가서 인간의 가치를 배우며 실천하고 싶다. 네번째는 조지아주에서 메인주까지 3,498km의 애팔래치아 트레일 전 구간 종주이나 체력적으로 무리인 듯 해 버지니아에서 시작해 메릴랜드를 거쳐 펜실베이니아 구간까지 만이라도 가보는 것이다.
“나무 등걸에, 바위에 새겨진 애팔래치아 트레일 하얀 표지판을 보며 산길을 걸어보고 싶다. 애팔래치아 트레킹을 다룬 ‘나를 부르는 숲’ 의 저자 빌 브라이슨은 ‘숲은 위대한 고독의 공급처’라고 했다. 그 곳에서 위대한 고독을 맛보고 싶다.” 다섯번째는 하로동선(夏爐冬扇)의 의미를 유지하며 ‘목요 좋은 시간’을 중단없이 실행하는 것이다.
그는 “인생의 절반보다 훨씬 먼 오분의 사쯤 와 있다고 생각한다. 야구로 치면 8회 정도다. 마무리 투수가 나와서 경기를 책임지듯이 지금부터는 익숙함과 결별하는 법을 배우고 내가 원하는 나로 살고 싶다”는 속마음을 내비쳤다.
“최근에는 ‘지나가는 개도 한다’는 유튜브를 준비하고 있다. 소설을 읽어주는 채널인데 좀 더 나은 낭독을 위해 열심히 목소리를 다듬고 연습하고 있다.” 그가 유튜브를 하려는 이유는 “스스로 책을 읽는 것에 대한 진정함과 함께 물리적 의무감을 불어 넣기 위해서”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에 대해 묻자 “아내와 가족을 제외한다면 관계와 가치라 생각한다. 오늘 이 순간, 지금 만나는 모든 관계는 나에게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지금 만나는 사람, 지금 먹는 음식, 지금 행하는 행동이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답했다.
▲“별을 만나고 싶다” / 모니카 리 씨(50대, 페어팩스)
모니카 리 박사는 상담 전문 카운슬러로 한 주에 35-40시간 일하는 현역이다.
바쁜 일상 가운데서도 매주 10-15시간 정도는 gym에 가거나 golf 및 hiking 등을 즐긴다. 매달 북클럽에 참석하며 책을 읽고, 노래하기를 좋아해서 지난 5년동안 2주에 한번 ‘합창모임’에도 빠지지 않는다.
2017년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했다. 당시 개인적으로 마음의 대지진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매일 그냥 걷다가 힘들면 쓰러져 자려고 떠났었다. 매일 15-23마일을 걸었고, 28일만에 500마일의 순례길을 마쳤다. 3주쯤 무렵에 시골길을 혼자 걷다가 스틱에 발이 걸려 넘어지며 이마에서 피가 나는 사고도 났었다. 살아있음과 죽음 사이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경험했다. 각국의 다양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낯설지만 결코 낯설지 않았던 ‘인간’ 깊은 곳의 따뜻함도 경험했다. “무엇보다 나 자신과 가장 친밀한 시간을 보냈고 오롯이 내 가슴의 소리를 들어준, 나와 가장 깊이 연결된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그의 버킷 리스트는 남편과 미국의 50개주 국립공원을 함께 road trip과 hiking하기다. 이 계획은 2-3년후에 남편이 30년해 온 사업 정리후에 시작할 계획이다.
두 번째는 남반구의 은하수와 북반구의 은하수 보기다. 고등학교부터 하늘에 관심이 많아서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전공은 못했지만 대학교 4년동안 아마추어 천문회에서 별을 관측했었다.
세 번째도 하늘과 관련된 것으로 개기일식(total eclipse) 보기. 달그림자가 해를 완전히 가렸을 때 세상이 잠시 어둑어둑해지면서 온도도 떨어지면서 태양의 코로나가 빛나는 순간을 꼭 경험해 보고싶다.
네 번째는 Spanish를 영어만큼 편하게 구사하는 것. 20년전 멕시코 선교를 가면서 9개월 정도 배웠는데 스페인 산티아고 걸을 때와 스페인 남부 여행, 파타고니아와 잉카 트레일을 걸을 때 간단한 소통에 도움이 되었다.
다섯 번째는 합창단에 가입해서 노래하기. 기회가 닿으면 지역의 합창단인‘ Washington Chorus 오디션에 합격, 연말에 케네디센터에서 캔들 라잇 싱어롱 무대에 서보고 싶다.
인생의 절반을 돌아 터닝포인트에서의 인생철학은 매순간 더 많이 깨어있기. 그래서 지금 여기(Here & Now)의 소중함을 더 자주 느끼며 천천히, 단순하게 그리고 소박하게 살기다.
▲“도예·중보기도…우아하게 나이 먹는다” / 제인 김씨(60대, 로턴)
지난 2022년에 22년간 근무했던 페어팩스 카운티 공립도서관 사서에서 은퇴한 후 더 바쁘게 지내고 있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다. 아직 더 일할 수 있었지만 과감히 은퇴를 결정한 것은 “할 일이 너무 많고, 평생 하고 싶었지만 시간과 기회가 부족했던 일 들을 하고 싶어서”였다.
김씨는 “40년 전 예수님을 만나면서 기도의 사명으로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동안 남편(김한 목사)의 목회를 돕고, 가정과 직장생활로 힘든 시기도 있었다. 목회 은퇴후 미국과 한국을 위해 중보기도자로 헌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2년 동안은 미국의 차세대들을 위한 정책과 교육계의 정책, 반성경적으로 흐르고 있는 문화 등 미국의 기사들을 정리하여 카톡의 중보기도자들에게 알리는 동시에 기도의 방향을 알고 기도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의 대선이 끝난 후 현재는 대한민국이 마주한 위기의 상황을 위해서도 중보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다.
그의 버킷 리스트는 ▷도자기 굽고 그 위에 그림 그리기 ▷나라 위한 중보기도자로 쓰임받기 ▷테크놀로지 계속 배우고 새 스킬 습득하기 ▷여행과 선교 계속 다니기 ▷영상 만들고 올리는 법 배우기다.
특히 도예에 관심이 많다. 그는 “도자기를 시작한 것은 은퇴하기 8년 전부터다. 평생 하고싶던 것이라 은퇴 준비 중 하나로 수업을 들으며 시작했다. 단순한 도자기 굽기가 아니라 그림을 그려넣고 싶었다”고 말했다. 새 힘을 얻은 독수리의 날개 치며 비상하는 모습 등을 그리고 싶어 드로잉과 페인팅 수업까지 받았다. 애난데일 소재 조지메이슨 도서관을 비롯해 센터빌 도서관, 타이슨스 피밋 도서관 등 공립도서관에 있는 디스플레이 케이스에 전시도 했다. 현재 Alexandria Clay Co-op 멤버로 활동하며 도예 사랑에 빠져 있다.
그는 “나이 들어도 배움에 대한 열정은 부지런함과 에너지를 솟구치게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내 힘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을 때도 생긴다”며 “기도하며 최선을 다한 후에 나의 목적과 의지를 완전히 내려놓기, 손해도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마음으로 완전한 포기가 시작이라는 교훈도 얻었다”고 고백했다. 앞으로의 소망은 “손자 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기, 예수님께 순종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쓰임 받고 싶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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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