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에는 선물을 많이 주고받는다. 선물은 받는 이를 생각하며 고른다는 게 중요하다. 그는 이런 걸 좋아한다며 무엇이든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즐거운 마음으로 주고 받아야 한다. 미운이를 위한 의무적인 선물은 형식적이고 그 위치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익을 바라는 선물은 뇌물이 될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무엇이든 아무리 잘 골라도 한끗 차이로 뭔가가 마음에 차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일단 기쁘게 받는다.
할머니가 되니 이제는 꼭 받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누구를 위한 선물도 요즘 시대에 어울리는지 망설인다. 요즘은 무엇을 보내든지 받는 이의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게 영수증을 함께 보내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친한 이에겐 아예 대놓고 뭐 받고 싶냐고 물어보거나 원하는 상품권 카드를 주게 된다.
우리에게 뭐가 받고 싶어요? 하면 상대가 먹고 싶거나 갖고 싶었던 것으로 같이 나눠 먹고 남으면 싸가거나, 시들면 없어버리는 게 내게는 편하다. 나이가 들면서 무엇이든 처음에 받을 땐 선물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처리해야 할 골치 아픈 짐이 되는 걸 알기에 부피가 있는 물건은 부담이 된다.
보기와 다르게 별로 깊은 정이 없고 쌀쌀한 나는 연말이 되면 정리를 하는데 많이 줄어들지가 않는다.
비뚤비뚤 그린 손주들의 그림카드와 붕붕이 자동차, 왜 갖고 있는지 모르는 이상한 팸플릿, 잡다한 장식품과 알록달록 쇼핑백, 반짝이는 머리핀과 색동 양말, 해마다 꺼냈다가 다시 걸어두는 쓸모 없는 비싼 가방, 내 눈에만 예쁜 레이스 블라우스와 야시한 민소매, 몽실몽실한 신발, 한글학교 학습자료와 교과서, 무겁고 오래된 접시, 한때는 그렇게나 소중했던 이것들을 내년에는 정리할 수 있을까?
그래도 해마다 기다리는 소중한 선물이 있다. 미국에서 한국학교 교사를 하면서 만난 제자의 카드들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못해도 즐거웠던 그녀는 일년 동안의 중요한 사진으로 만든 카드를 비뚤비뚤한 한글로 해마다 보내주더니 이제는 미국 드라마에도 나오는 30대의 탤런트가 되어서 흐뭇한 기쁨을 준다.
한국학교를 잘 다닌 똘망똘망한 손녀같은 영이는 이번에 공부 잘 한다는 아이비리그 대학 새내기가 되어 멀고 먼 친구집에 간 김에 만나서 공동 화장실과 샤워장이 있는데 남녀공용 기숙사라는데 깜짝 놀라 안에서 잠그는 커다란 자물통을 사주고 싶었고 대학 후드티도 입어보고 아이스크림과 고기도 먹으며 미국 대학생이 된듯하여 봄 방학 만남을 기약하며 애틋하게 헤어진 뒤 고맙다는 카드를 받을 때 마다 잘난 척이 하늘을 찌르면서 흐뭇한 추수감사절을 지냈다.
그리고 연말연시답게 카드와 소포와 우편물 속에서 이상한 벌금 티켓을 받고 속상해서 할말을 잃었다.
공무원은 모범이 되어야 한다며 싹 바뀐 남편도 몇 년동안 티켓이 없었는데 이번에 선물처럼 3장이나 날아왔다.
아니 이게 뭐야? 그동안 티켓이 날아오면 으례히 남편에게 큰소리 했는데 이번에도 당연히 쯧쯧거리며 자세히 비디오로 살펴보니 시간상 이게 전부 내가 운전한 것이라니 어쩔 거나 싶어서 황당했다.
저 멀리 델라웨어에서는 조금 과속했는데 그곳은 특별히 2배로 내는 곳이란다. 이런 제기랄 된장 같으니….
성당 점심봉사에 쓸 깍두기를 담아놓고 맛있게 익으라며 흥얼거리며 오다가 빨간 신호등에 우회전했다고 티켓이 날아와서 고추가루 범벅인 앞치마를 빨며 비굴하게 남편에게 결제를 부탁했다.
그 다음 주에 육개장과 깍두기를 잘 팔고 후련하게 돌아오면서 비슷한 다른 길에서 똑같이 빨간 불에 우회전이라고 또 한 장이 와서 똑 같은게 두번 온줄 알았지만 범인은 나였다. 아니 분명히 NO TURN RED도 아닌데 5초 이상 멈췄다며 묻는 나에게 STOP HERE RED라는 표시판을 확대해 보여주며 그러니까 무조건 앞만 보고 천천히 가는 게 장땡이 아니라 차선도 바꾸면서 흐름을 타야 된다며 묘한 비웃음을 날리며 괜찮다고 한다.
성탄이 다가온 어느 날 생각해보니 아주 나쁘고 큰 죄를 저지른 건 없는 것 같아 번개불에 콩 볶듯이 잽싸게 대충 고백성사를 한 내게 큰 벌을 선물로 주신것 같다. 되돌아보니 올해는 너무 기고만장했고 잘난 체가 심했고 모든 것이 다 내 복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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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희 전 한국학교 교사,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