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오랫만이야. 뭐가 그렇게 분주했는지. 정말 오랫만에 책상 앞에 앉아서 너를 대하네. 창문 너머로 앙상한 나무의 그림자가 눈 덮힌 숲에 길게 드리워져 있어.
스산한 겨울 풍경속에서 창틀을 타고 기어 오르는 담쟁이 덩굴만이 도도한 생명을 자랑해. 도톰한 줄기는 별 모양의 작은 잎들 사이로 덩굴손을 마디마다 틔워서 창틀을 꼭 움켜 잡고 기어 오르는데 이층에 있는 내 방까지 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 같아. 저렇게 여린 것이 힘도 세지. 이 먼곳까지. 엄청난 생명력이야!
모든 것이 움추리고 잦아드는 겨울에 혼자만 파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녀석을 감탄하면서도 밉기도 해. 녀석들이 내겐 골칫거리거든. 지난 여름부터 가을까지 녀석들의 뿌리를 뽑아내느라고 적잖은 고생을 했어.
자연에는 선이나 악이 없지. 오로지 균형만이. 균형과 순환의 원리속에서 어느 위치에서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천사도 되고 악마도 된다고도 생각해. 지난 여름 뒤뜰 아래 연결된 숲에서 신기한 현상을 목격했어. 흙속에서 꽃대 같이 생긴 밋밋한 줄기 서너대가 올라와 있었어. 그래서 이게 뭐지? 하고 지켜보았지.
이 꽃대는 계속 자라기만 하더니 어느날 긴 꽃대의 꼭대기에 족도리를 얹은 것 같은 분홍색의 아름다운 꽃이 피었어. 그때 내 가슴에 퍼지던 환희는 말도 할 수 없었어. 하늘에서 축복이라는 구슬이 쏟아진 것 같았어. 꽃이 나를 축복하러 온 천사로 생각되었어.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꽃이어서 알아보았는데 이름이 상사화래. 그 꽃은 잎이 먼저 나와서 사라진 후에 꽃대가 나와서 꽃을 피운데. 꽃과 잎이 전혀 서로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나봐.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봤어.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혹 내게 해가 되는 독성물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내가 당시에 알고 있었더라면 그 꽃을 봤을 때 내가 그렇게 기뻐했을까? 그 꽃이 내게 천사이고 축복이고 환희가 될 수 있었을까?
한해의 끝자락에서, 눈 나리는 정원에 내 창을 기어오르는 유일한 초록의 담쟁이 덩굴이 밉지는 않아. 오히려 귀여워. 이렇게 느껴지는 것은 나는 언제든 이 녀석의 뿌리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일 거야. 만약 내가 이 녀석을 전혀 어떻게 할 능력이 없다면 내 감정은 달라지겠지. 정말 싫고 무섭기까지 하겠지. 내 정원의 나무를 모두 죽일 것을 상상할테니까. 나의 처지가 어떠냐에 따라서 나는 이 녀석을 악마로도 보고 천사로도 볼 수 있어. 그렇다면 우리의 행과 불행도 내가 가족과, 사회와, 자연과 우주와 어떤 관계 속에 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닐까?
우리의 브레인은 관계속에서 우리의 감정을 행복하게도 무섭게도 슬프게도 만들어내지. 브레인의 궁극적인 목적은 내 생명 현상 지속시키는 것이야. 그리고 브레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내가 환경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전략을 짜고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지. 내가 만나는 모든 대상과 사람들을 내 삶의 지속가능성에 비추어 도움을 주는지 해를 주는지 측정하고 그 측정된 값으로 감정을 만들고, 만들어진 그 감정에 따라서 나의 행동을 계획하고 결정해.
이런 의미에서 니체의 ‘신은 죽었다’ 는 굉장한 통찰의 선언이었어. 종교적인 절대진리를 추구해온 중세 천년 암흑의 시기가 갈릴레오의 지동설,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파괴되어 가던 시대, 유럽인들의 항해술이 지구의 구석구석을 탐험하면서 도착하는 대륙마다 닥치는 대로 총칼로 주민들은 잡아서 노예선에 태우고, 그 나라의 자원은 착취해 자국의 부를 축적하던 시대, 가슴속에 괴리와 갈등은 애써 외면하고 움켜잡고 있는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던 유럽의 왕들과 종교지도자들의 만행의 시대에 니체의 ‘신은 죽었다’ 는 니체 자신의 표현대로, ‘망치로 두개골을 깨는’ 선언이었어. 니체가 ‘신은 죽었다’하는 신은 천사와 악마를 가르는 신이야.
니체는 ‘춤추는 신’이 진정한 신이라고 했어. 그의 신은 춤을 춰. 그의 신은 천사나 악마의 특성을 모두 가지면서도 동시에 모두를 가지고 있지 않아. 그의 신은 대지의 리듬과 해와 달과 바다의 간조와 우리 혈액에 흐르는 조상의 피의 박동에 장단을 맞추어 춤을 추는 신이야.
우리는 춤을 추어야 해. 혈액속에 생명이 태어난 옛바다의 염도를 담고 있는 우리. 옛 바다의 파도와 그 바다의 물결에 부유하던 활유어와 박테리아, 바이러스들의 몸짓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 해. 해와 달의 장단과 계절의 운율에 맞추어 춤을 추며 우리는 찰나라고 불려지는 삶의 순간 순간을 깊은 감사와 지극한 행복함으로 영원을 만들어내야 해.
내가 나에게! 우리 2025년 새해 첫날의 아침해를 이 방의 동쪽창에서 맞이하자. 대서양의 수평선 위로 올라 오는 태양이 볼티모어 이너하버를 비추고 저 창문을 뚫고 우리 이마에 꽃히는 그 순간, 두손을 가슴에 모으고 서로 이렇게 속삭이자 ‘우주에서 오시는 이여! 오늘, 당신이 비추시는 이 사랑의 빛으로 인하여 우리의 순간이 영원합니다’
<
김은영 워싱턴 DC. 기후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