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3일, 워싱턴 성광교회가 주최한 나눔 활동은 단순히 성금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한인사회와 지역사회를 하나로 연결하는 아름다운 행보였다. 워싱턴한인복지센터에서 10개의 한인 단체와 소방서, 도서관 등 12개 기관에 전달된 성금은 한인사회가 가진 따뜻한 연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 나눔은 단순한 물질적 지원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한인 시니어 세대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사명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이민 1세인 한인 시니어들은 단순한 개인의 역사가 아닌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살아온 세대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미군정기,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의 굴곡 속에서 생존과 재건의 기치를 올리며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끌어온 주역이었다. 1970년대 대량 이민 물결을 타고 미국에 정착한 이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가꾸며 한인사회와 가정을 책임지고, 오늘날의 한인 공동체를 이루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들의 헌신과 성취는 개인적인 성공의 차원을 넘어 한인사회 전체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 세대에게는 여전히 중요한 사명이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 한인의 정체성을 후대에 전수하고, 이민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서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대와 환경 속에서, 한인 시니어들은 자신의 경험과 가치를 통해 한미 양국의 문화를 조화롭게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 이 과업은 개인의 노력을 넘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상록회와 같은 기관이 그 중심에 있다.
상록회는 단순히 시니어들의 모임이나 활동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이민 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고 세대 간 소통을 도모하며, 평생교육을 통해 시니어들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플랫폼이다. 평생교육은 시니어들이 단순히 배움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넘어,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주체적으로 삶을 설계하고 후대를 이끌어갈 지혜를 나눌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과정에서 상록회는 시니어들이 겪을 수 있는 고립감, 정체성 혼란, 세대 간 갈등 등을 완화하고, 건강한 한인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12월 23일을 기점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미국 또한 5년 내에 초고령 사회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저출생과 초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에서 시니어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단순히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주체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이는 한인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니어에 대한 관심과 문제 해결은 소수민족 공동체의 정체성과 생존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축이 될 것이다.
따라서 한인사회가 시니어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단순한 복지의 차원을 넘어선다. 이는 한인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고, 세대 간 이해와 연대를 강화하며, 다문화 사회에서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필수적이다. 상록회는 이러한 사명을 실천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들의 활동은 시니어들이 단순히 과거의 영광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한다.
이민 세대가 이룬 역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상록회의 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새겨지고, 후대에 전수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인 시니어들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주인공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상록회는 그 여정에서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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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운 메릴랜드 상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