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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 됐다 나락 간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는 패배하지 않았다

2024-11-29 (금) 라제기 영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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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마사’

▶ 완벽 추구했던 여성의 성공

억만장자 됐다 나락 간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는 패배하지 않았다

마사 스튜어트는 자신이 설립한 살림 관련 미디어그룹이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되면서 인생의 정점에 오른다. [넷플릭스 제공]

사람 이름이 브랜드인 경우는 흔치 않다. 경영컨설팅 분야에서는 가끔 있으나 제조업이나 미디어업 쪽에서는 아예 찾기 어렵다. 미국인을 한때 사로잡았던 마사 스튜어트(83)는 달랐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잡지로 사랑받았고, 미디어제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인생 정점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마사 스튜어트의 삶은 드라마틱하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맨손으로 억만장자의 자리에 올랐다가 순식간에 몰락했으니까. 다큐멘터리 ‘마사’는 그의 화려하고도 굴곡진 삶을 세세히 되짚어본다.

스튜어트는 ‘살림의 여왕’으로 불렸다.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이나 우리 삶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살림을 인생 중심부로 위치시켰다. 요리의 즐거움, 집안 꾸미기의 기쁨, 정원 가꾸기의 행복을 설파한 전도사였다.


다큐멘터리는 ‘완벽한 살림꾼’ 스튜어트의 원형을 부모에게서 찾는다. 아버지는 엄격한 성격에 원예 애호가였다. 어머니는 요리에 능통했다. 가정환경에 스튜어트의 재능과 성격이 더해졌다. 그의 창의성은 완벽주의가 곁들어지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스튜어트는 원예를 전공하거나 요리를 따로 공부하지는 않았다. 그는 대학 1학년 때 일찌감치 반려자를 만나 결혼했다. 출산 후 생애 처음으로 다닌 직장은 증권사였다. 집안과 정원 꾸미기를 유난히 좋아했던 스튜어트는 출판사 대표가 된 남편을 위해 파티를 자주 열면서 재능을 세상에 펼칠 기회를 얻었다. 행사 음식 공급 사업을 하며 사람들의 감탄을 샀고, 한 출판사 대표의 제안으로 책을 내게 됐다. ‘마사 스튜어트 신화’의 시작이었다.

스튜어트는 살림을 주제로 한 잡지까지 냈고,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마사 스튜어트 리빙 옴니미디어라는 미디어그룹은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됐다. 그는 자신의 힘만으로 억만장자 사업가가 된 최초의 여성으로 꼽혔다.

다큐멘터리는 스튜어트에게 드리운 어둠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집밖 여자들에게 마음을 두고는 했던 남편과의 갈등, 악녀라는 표현으로 스튜어트의 성취를 깎아내렸던 황색언론의 상업주의 등이 스튜어트를 괴롭혔다.

스튜어트는 2002년 주가조작과 내부거래 혐의를 받으며 급속도로 몰락했다. 그는 결백을 연신 주장했고 위법한 증거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으나 언론은 그를 범죄자로 몰아세웠다. 검찰은 결국 위증죄를 걸어 스튜어트를 옭아맸다. 그가 추락하자 ‘마사 스튜어트’라는 브랜드는 속절없이 가치를 잃었다.

스튜어트는 인생이라는 시련에 굴복했을까. 적어도 다큐멘터리는 그를 승자로 여긴다. 여러 부침을 겪으며 자신의 삶을 가꿔왔으니까. 단아한 집과 넓은 정원, 말들이 뛰노는 목장은 그의 현 위치를 웅변한다.

스튜어트의 삶을 일방적 시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딸과 여동생, 친구, 회사 직원, 언론인 등 다양한 목소리로 40년 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유명인에게 입체적으로 접근한다. 스튜어트의 교도소 생활이 묘사되고, 그가 남편에게 보낸 가슴 아픈 편지들이 공개되기도 한다. 다큐멘터리는 스튜어트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등장하기 전부터 활동해 온 최초의 ‘인플루언서’라고 규정한다. 20세 후반 미국 여성들과 가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온당한 표현이다. 다큐멘터리 ‘빌리 아일리시: 조금 흐릿한 세상’(2021) 등의 R. J. 커들러 감독이 연출했다.

<라제기 영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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