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이재명 유죄판결 거센 후폭풍

2024-11-21 (목) 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 VA
크게 작게
한국 정국에 비상등이 켜졌다. 빨간불이면 경고수준인데 비상등이 켜졌다는 것은 대폭발 직전 상태를 경고하는 신호다.

사법부의 더불어 민주당 이재명 대표 유죄판결은 더욱 더 돌이킬 수 없는 극한 상황으로 정국을 빠져들게 만들었다. 일단 1심 재판부(재판장 한상진)의 서릿발 같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유죄판결은 사법부의 권위를 회복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가 정의를 과시했다는 점에서 격려를 아끼지 않겠다.

사실상 우리 사법부는 본래의 업무에 정도를 벗어난 숱한 비굴, 타락 권력, 국민여론 눈치 보기 판결로 평성이 한껏 천시 받아 왔다는 게 사실 아니었던가. 심지어 시중에서는 ‘권력의 시녀'라는 별명까지 따라다니고 있다.


피고 이재명에 대한 유죄판결은 항소, 상고를 거쳐야 유무죄 여부가 확정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질질 2년 반을 끌어오던 사건의 한 매듭을 풀어냈다는 점에서 가산점을 매기고 싶다.

1심에서 1년 징역, 2년 집행유예 언도를 받은 이재명 대표는 며칠 후(25일) 검사사칭 위증교사 혐의로 또 재판을 받아야 한다. 검찰은 이미 이재명에게 징역 3년을 구형해 놓고 있는 상태다. 이 사건을 같은 판사들은 이미 1심 재판에서 이재명 피고가 엄중 형량을 받았기 때문에 부담감 없이 중형을 언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변호사이기도 한 이재명 자신이 그의 앞날을 예측하지 못할 리 없다. 내년 봄쯤에 열릴 대장동과 백현동 부정비리 혐의, 성남 FC 뇌물수수 혐의, 대북불법 송금혐의 등 계속 될 사법처리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그는 법질서에 순응하는 정도로 갈 것이냐, 아니면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에 국민 여론을 선동하여 혼란을 틈타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고 대선 분위기로 이끌어 결판을 내보자는 속셈이라는 것이 누구나의 관측일 것이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그는 기대를 넘어선 중형이 언도되자마자 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지지자들을 이끌고 거리로 나서 반정부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재명은 죽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죽지 않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황제 골프를 치는 돈은 매일 새벽 만원 버스를 타고 출근하며 국민이 번 돈을 탕진하는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이 처벌해야 합니다!” 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호응은 이미 유죄 언도를 받은 탓인지 대폭 맥 빠진 분위기였다고 언론들은 전한다. 당에서 총 동원령을 내렸으면 보통 4만 명 정도는 참석해야 하는데 1만 명도 채 안 되는 규모였다고 보도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민주당내 소위 비명계 인사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 대표가 유연해지고 구호대신 법리논쟁으로 가는 것이 장차 다가 올 사법처리에 ‘개전의 정(改悛의 情)’이라도 참작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한다.


한편 혼란정국이 이재명 대표의 유죄판결로 쉽사리 수습국면에 접어들지 않을 양상이다. 우리 정치가 오늘날처럼 수렁에 빠지게 된 원인은 야당만이 저질러 놓은 것이고 이재명에게만 책임을 지을 수 없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혼란 정치가 초래된 데에는 분명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인 국민의 힘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금 여야 모두가 사필귀정을 입버릇처럼 떠들어 대고 있지만 누가 누구에게 이 말을 들이대는 건지 헷갈린다. 정치인들이 진정한 애국심이 있다면 모두 퇴진하고 민족통일을 지향하는 중도주의 양심세력이 나라를 이끌게 해야 한다는 정의 정론을 부르짖어야 할 시간이다.

국민들은 사불범정(邪不犯正: 곧 정의가 반드시 이김), 사사귀정(捨邪歸正: 그릇된 것을 버리고 옳은 길로 돌아섬)을 외치고 있다. 이 법구경은 승려들이 환자에게 씌워진 악귀를 퇴치할 때 종종 인용하는 염불이다. 한껏 중병이 든 우리 정국의 정상화를 염원하며 떠올려지는 구절이다.

이재명의 단군 이래 각종 부정비리 혐의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뇌물수수에 걸려 소도둑과 바늘 도둑의 희한한 대결, 특검공세와 거부권 방어, 윤석열 정부의 무기력과 이재명의 방탄 묘기로 나라 전체가 탈출구 없는 막판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야당 대표가 치명타를 맞고 당 전체가 불행한 상태가 되었다면 여당도 좀 신중하고 수습의 길에 협조하는 것이 도리이다. 상대의 불행을 자기 당의 행복처럼 좋아라고 손벽치며 조롱하는 태도는 정치불신, 감정악화를 부채질 하는 경솔한 책동이다.

혼란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어느 한 편만 패퇴하고 다른 한 편은 계속 활개를 치는 상황이 돼서는 안 된다. 그런 사태는 패자의 재도전을 유발, 또 다른 혼란 형태의 예고편이나 다름 아닐 것이다. 여야 다 함께 진정성, 양심을 찾으라고 권한다. (571)326-6609 

<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 VA>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