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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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에게 행운일 수도

2024-10-31 (목) 이영묵 문인/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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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이라 아직도 그대로인지 모르겠으나 기차를 타고 신강 즉 위구르로 들어서면 역 광장마다 시진핑이 위구르 족 전통 옷을 입은 어린아이들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가는 포스터를 보게 된다.

그리고 모스크바 지하철역에 들어서면 이자가 5%이니 7%이니 하면서 자유와 자본주의의 물결로 금융회사 선전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러시아 공산정권이 트랙터를 만들어 농민들의 고역을 면하게 해 주었다는 공산당 선전과 레닌이 우크라이나 어린이들과 한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 포스터를 볼 수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껴안은 선전 포스터란 말이다.

사실 러시아란 나라 이름이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에 루스(또는 러스) 족이 세운 나라에서 기원한다. 그리고 저 북쪽에 크렘린(성곽, 요새)을 짓고 그 지역 지방의 세금을 걷어들이던 모스크바 공이 나중에 나라를 세웠으니 사실 우크라이나는 본방이고 모스크바는 변방이었다.


그러나 모스크바가 사회주의 국가로, 소비에트 연방의 주축이 되어 세계 2차 대전 당시에는 미국과 영국을 주체로 하는 자본주의 집단과 모스크바를 주축으로 하는 사회주의 연방 즉 소비에트 연방으로 양축으로 전개되었다.

출발 당시 소비에트 연방 그룹으로는 에스토니아 등의 발트 3국, 체코 헝가리 폴란드 벨라루스 등 동구권, 루마니아 알바니 등 발칸반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등 코카서스 3국,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권 등 방대한 지역 나라로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제 문화 사상 모든 면에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게 패배를 당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맨 먼저 발트 3국이 경제적인 이유로 떨어져 나가고 프라하의 봄이다 하며 동구권의 민주화의 저항 등이 발생하고 스탈린의 고향 그루지아마저도 나라 이름을 서방식 조지아로 바꾸는 등 소비에트 권에서 떨어져 나가도 이미 그들을 제어할 힘도 재정적 여유도 없었다.

종래에는 1991년 보리스 옐친이 러시아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소비에트 연방은 종말을 고한다. 오늘의 러시아는 벨라루스 하나 정도 말고는 모두 떨어져 나가 이제 홀로의 나라가 되었다.

사실 우크라이나의 전직 대통령 빅토르 유센코 때부터 친서방적인 자유시장 경제로 또 NATO 가입 운운해서 긴장하다가 이름도 문학가 도스토예프스키, 음악천재 차이코프스키 하는 러시아의 보편적 이름 스키, 스키 하는 젤렌스키라는 이름으로 완전한 러시아를 구사하며 코미디 드라마 PD를 지낸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이제는 그가 러시아쪽 사람이라고 안심하려고 했으나 그것이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NATO 가입을 진행하려 했다.

결국 러시아가 이상 더 서방세계에게 코앞까지 밀려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우크라이나와 선전포고가 아니라 국내의 전시작전이란 이름으로 친 러시아계 정권을 세우겠다고 탱크를 앞세우고 쳐들어갔다. 그것은 큰 오산이었고 서방 세계의 지원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저항으로 3년에 걸쳐 러시아는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수렁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내로 쳐들어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모스크바로 향하는 길목인 쿠르스크를 우크라이나가 급습하여 점령했기에 당황한 러시아가 경제 지원인지 극비의 군사 기술 조건인지 좌우간 무슨 큰 흥정 속에 북한의 군사를 우크라이나 전쟁에 끌어들여 12,000명을 쿠르스크 최전선에 투입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북한 군인들이 이 와중에서 큰 희생이 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현재의 사태를 보면서 서방 세계가 러시아에게 한 90% 정도까지 이겨야지 100%로 이기겠다고 너무 몰아붙여서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30% 정도가 러시아계통의 사람들이고 러시아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 우크라이나 정도는 완충지대로 해서 러시아를 더 이상 궁지로 몰지 말았으면 한다. 쥐도 도망을 갈 수가 없으면 고양이에게 죽기 살기로 덤벼든다고 하지 않는가? 또한 더 나아가 한국 정부도 NATO와 같은 배를 탔다고 이 사태에 참여하는 것 또한 바람직한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6.25 남침을 사주한 소비에트 연방은 증오하지만 러시아에 대해서는 애련한 향수가 있다. 아마도 그것은 푸쉬킨이라는 시인,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같은 문호,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같은 음악가 등 나의 젊은 시절 나의 문학 세계를 풍부하게 한 것이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거듭 이야기해서 나는 한국인들의 정서에 벗어날지 모르겠으나 제발 쿠르스크에서 전쟁으로, 비록 북한의 군인이지만 다수의 한국인이 죽은 한국사에 남을 비극이 없기를 바란다. 또 러시아 최전방의 북한군의 탈출로 대거 남한으로 오는 행운이 있었으면 한다. 아니면 최소한 북한 군인들이 번영하고 있는 한국 소식을 가지고 북한으로 갔으면 한다. 사실 이번 사태가 어쩌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영묵 문인/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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