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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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받이와 방패막이

2024-10-29 (화)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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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유익을 보거나 항상 손해를 보는 경우는 없다. 때로는 유익을 보기도 하고 손해를 보기도 한다. 호랑이가 아무리 산속의 맹수라고 하더라도 작은 쥐의 도움을 입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피해를 입는 총알받이로 살 때가 있고, 다른 사람을 크게 도우는 방패막이로 살 때가 있다.

유엔군이 6.25 한국전쟁때 압록강까지 진격했을 때 당시의 중공군이 소위 인해전술이라고 하는 대규모의 군대를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중공군의 군사력이 얼마나 강한 것과는 별도로 그 군대의 숫자가 엄청났는데 그 희생된 중공군은 무려 14만 9천여명이 된다. 그들은 결국 전쟁의 총알받이가 된 것이다. 지금 북한이 우러 전쟁에 북한군 2천 500명을 파병했다는 보도가 있다. 우리의 동포형제들의 아까운 목숨이 전쟁에서 총알받이로 희생되는 그런 비극은 생기지 않아야 할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알면서 모르면서 희생을 당할 때가 있다. 억울하게 손해를 볼 때도 있지만 알면서도 당할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의 총알받이가 된다는 것은 잠시동안은 아프고 힘든 일일 수 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그 희생과 수고가 고귀한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총알받이로 오셨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다. 또 자기 민족 유대인들에게 조롱과 비판과 핍박을 받으셨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한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2:23-24)

이 세상에 희생된 무고한 많은 사람들, 위인들이 있다. 그들의 인생은 때로는 짧고 아쉽지만 그러나 그들이 어느 누구를 위해 희생된 총알받이의 삶이었다면 기억하고 칭찬해주어야 하는 삶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거나 이용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다. 부당하게 사람을 대우하고, 그들의 희생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거나 명예를 얻으려는 역사의 오명을 받은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역사적으로든지 사회적으로든지 지탄을 받아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총알받이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 오히려 총알받이하는 사람들을 위해 방패막이로 나서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이 받아야 할 총알을 대신 맞고 그 사람들을 앞에서 방패가 되어 막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늘 나는 어깨를 펴고 다녔다. 사촌 형님들과 육촌 형님들이 계셨고, 그리고 나를 제일 사랑하는 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 누구에게 총알받이로 희생을 당하든, 아니면 내가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총알받이로 살던 그 삶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가정이든 교회이든 사회이든 나의 존재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큰 방패막이가 된다면 나의 삶의 존재감은 클 것이다. 총알받이로 사느냐? 방패막이로 사느냐? 그것이 문제가 되어 삶의 답을 찾아가기를 원한다.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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