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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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2024-10-27 (일) 이근혁 패사디나,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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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내가 살아서 의식이 있을 때까지만 존재한다. 죽을 때 의식이 함께 간다는 말도 하지만 몸을 떠나가는 의식을 아는 사람은 없다. 내가 없을 때는 세상의 의미도 사라진다.

살아 있을 때 한 일이 뒤에 영향을 준다는 말도 여러 믿음 중 하나다. 내 의식이 없는데 전에 무엇이 있었고 후에 어떻게 된다는 것은 의미 없는 말이다. 내가 없으면 세상이 없고 세상이 없으면 내가 없는 것이다. 죽은 뒤의 세계는 아무도 모르고 여러 말만 있을 뿐이다.

영혼을 가진 우리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믿음이며 최고의 선택도 믿음이다. 그러나 믿음을 갖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분명하고, 더 나아가, 볼 수 없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질 때 시작된다.


믿음은 우리 체험의 한계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요구한다. 우리의 눈으로 보고 가늠할 수 있다면 필요치 않은 ‘무엇'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맑고 평온한 마음이 필요하다.

누구도 가보지 않았고, 아무도 모르며 현실적인 답은 없다. 오로지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 답을 낸다. 행적을 보고 따르기도 하고, 수긍이 가고 내 마음이 닿는 방향으로 같이 나아간다.

믿음은 가상의 답이지만 원하는 결과를 답으로 생각하며 생활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재의 확충이다. 수 번을 새로 태어난다고 하며 믿는 종교도 믿음으로 가상의 답을 찾은 것이다.

‘보지 않고 믿는 이 행복하여라.'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세상의 일들은 눈으로 보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말이다.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믿는다.
미래는 믿음의 결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믿음이 없는 삶은 현실적이며 모든 것을 논리와 과학으로 접근하게 되고 그런 삶에서 죽은 뒤의 세계는 없다. 내가 모르는, 의식 밖에서 일어날 일들은 결과도 답도 아니다.

인과응보는 현실에서의 일이다. 전생의 일을 지금의 나로 안다는 것이나, 지금 내 삶의 태도가 다음 생에서의 상황을 결정한다는 것도 특정 종교의 믿음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나 사후의 일도 믿음과 소망이다. 아무도 모르는 일을 그렇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최면이라는 신비한 영역도 있다. 범죄도 찾고 많은 것을 알아내기도 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사람의 영체이탈에 관해 연구하는 단체도 있다.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으로 우리 인간의 영혼 문제를 풀려는 시도도 있다.

지금 이 순간만이 가장 소중한 나의 진짜 시간이다. 깨어서 당장을 열심히 느끼고 살아가는 것이 전생의 보답이며 후생의 믿음에 대한 담보다. 내가 깨어있음으로 세상에 의미가 생기고 내 존재 가치로 되돌아온다.


해가 떠서 세상을 비추고, 기울어 밤이 되면 내 눈에 가득 들어오는 별빛이 그런 것이다. 달이 변하고 대기가 순환하여 구름이 되고 비가 내려 세상을 적시고 생명체를 활기로 채운다.

그리고 결국에는 나의 기쁨으로 다가와 스며든다. 나의 삶과 기쁨이 세상과 함께 라는 것을 마음으로 느낀다.

이 감동은 나의 의지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 어떤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믿음은 환경과 시공을 뛰어넘는 살아있는 말이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이근혁 패사디나,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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