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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開天節)에 생각하는‘열림’의 의미

2024-10-07 (월) 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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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해마다 10월 3일(원래는 음력 10월 3일), 하늘이 열렸음을 경축하는 개천절(開天節)을 기념한다. 한민족은 민족이나 국가의 시작을 개국(開國)이나 건국(建國)으로 바라보지 않고 개천(開天) 곧 ‘하늘의 열림’으로 이해하였다. 개천절은 하늘이 열린 날이요, 한민족의 마음(정신)이 열린 날이다.

나라마다 독립기념일 승전일 혁명일 등등 다양한 경축일이 있지만, 아마도 세계에서 겨레(민족)의 시원(始原)을 하늘에 두고 하늘이 열린 날을 국경일로 지키는 나라는 과문한 탓에 아직 못 본 듯하다. 지구촌의 민족시원 신화나 건국신화 가운데 한민족처럼 인류와 뭇생명 모두를 포함하는 ‘홍익인간 재세이화’같은 보편적 정신(사상, 이념)을 담은 신화도 아직 접해보지 못했다. 개천절은 한민족의 정체성과 한민족이 받은 인류와 생명을 위한 보편적 사상을 마음에 새기고 드러내는 날이다. 그런 면에서 개천절은 공휴일 가운데 하나가 아닌, 대한민국이 더욱 중히 여겨 역사적 정신적 문화적으로 개천의 의미를 세상에 드러내고 알려야 할 큰 경축일이다.

하늘이 열린 개천절에 ‘열림’(開, open)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우리 민족은 하늘을 열림의 가능태로 이해하였다. 부드러움과 심오함을 지닌 창조적 하늘 이해다. 모든 것은 열림으로 시작한다. 아름다운 꽃이 되려면 먼저 개화(開化)해야 하고, 학교도 운영 되려면 개교(開校)해야 한다. 열림이다. 열림은 모두가 기뻐하고 경축해야 할 만큼 신비로운 생성(生成)의 자리이다.


기독교의 성경도 하늘의 열림을 말한다. 하늘은 하늘의 뜻을 갈망하는 사람에게 열린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내려왔다.(마태3:16). 하늘이 열린 것이다. 하늘이 하늘인 것은 열림이 있기 때문이다. 하늘은 눈물 앞에, 부르짖음 앞에, 간절한 기도 앞에, 낮고 낮은 마음에, 진실과 정의를 향한 고난과 희생에 열림을 준다.

열림 없는 하늘(하느님)은 하늘이 아니다. 대문도 열림이 없으면 문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에 열림이 있는가? 어쩌면 가장 열림이 필요한 곳은 우리의 마음이요 이 세상일지 싶다. 요즘처럼 ‘닫힘, 막힘, 단절, 불통’이 가득한 우리 사회에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열림’이다.

내 마음에 열림이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무화과 나무 밑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나타나엘에게 , 하늘의 열림을 보게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요한1:51) 이는 나타나엘의 마음의 열림을 뜻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먼저 내 마음이 열리지 않고는 하늘의 열림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 열림은 쉽지 않다. 억지로도 저절로도 아닌, 마음 열림은 은혜다. 마음 열림은 때로 찢어짐의 아픔을 동반하기도 한다. 내 마음 속의 낡은 것이 찢어지지 않고서는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 하늘로 여기며 살던 것들 곧 옛하늘이 찢어져야만 새하늘이 열리기 때문이다.

열림은 영성이나 종교만의 언어가 아니다. 열림은 일상을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 낭시(Jean-Luc Nancy)는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에서 ‘인간이 된다는 것은 열려있다는 것’임을 주장하며, '열림'은 인간이 가시적 현상 너머를 인식하고, 가 닿으려 하는 인간 존재의 조건이라 말한다. 열림은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나만의 것을 넘어 ‘저 너머’를 바라봄이자 받아들임이다.

마음 열림이 있어야 한다. 닫힌 마음은 시공의 하늘(sky)만을 보지만, 하늘(Heaven)은 마음 열림으로 본다. 닫힌 마음은 하이데거가 말한‘존재자’를 볼 뿐이지만, ‘존재자 ’의 근원인 ‘존재(存在)’를 보는 것은 마음 열림이다. 닫힌 마음은 가진 자의 외적 화려함을 보지만, 열린 마음은 없는 자의 아픔과 경제 양극화의 모순을 본다. 닫힌 마음은 율법주의 근본주의 극우주의 한쪽 만을 보지만, 열린 마음은 극단적 사상 안에 있는 비인간성을 본다. 닫힌 마음은 기껏해야 구름층까지 보지만 열린 마음은 그 너머에 하늘이 열려있음을 본다.

마음 열림이다. 마음이 열려야 진실을 본다. 마음이 열려야 새로움을, 아름다움을, 하늘을 본다. 닫힌 낱사람 의식이 사라지고 마음이 열려야, 문득 그리고 확연히 ‘모두가 나요 우리요, 여기가 하느님의 집’임을 알게 된다. 개천절, 하늘이 열리듯 우리의 마음이 열리는 기쁨을 맛보고 싶다.

<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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