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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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Carmen)

2024-10-03 (목) 로리 정 갤럭시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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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집을 팔면서 생긴 돈 890불은 기대하지 않았던 돈이니 필자에게 알아서 쓰라고 했다.

알아서 쓰라고 하니 더 부담이다. 고민 끝에 약간의 돈을 보태 500불은 페어팩스 카운티 내 결식아동을 위해 일하는 단체에, 다른 500불은 한국 교회를 빌려 사용하는 남미 교회에 기부했다. 남미 교회에 기부할 때는, 교회의 운영 자금보다는 공부는 하고 싶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썼으면 좋겠다고 나의 생각을 말했다. 나의 바람을 얘기하긴 했지만, 확인은 하지 않았다. 내 손을 떠났기 때문이다.

남미 교회에 기부할 때 ‘카르멘’이라는 친구와 의논을 했다. 내 돈이 아니기 때문에 기부한 분의 이름으로 영수증과 감사장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친구는 나를 본인 집으로 초대했다. 필자는 25년 넘게 이 곳 워싱턴 지역에 살고 있고, 또 부동산 일을 한 지 20년이 넘었기 때문에, 이 동네는 주소만 대면 어디인지 거의 다 안다. 하지만 이 친구가 알려준 집 주소는 낯설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가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없는 남미 사람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다.


기부에 관한 논의가 끝나니, 저녁을 먹고 가란다. 뽀뿌사라는 멕시코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 준다. 뽀뿌사는 옥수수 가루를 반죽한 후, 우리네 만두 빚듯이 반죽을 동그랗고 평평하게 만들어 그 안에 치즈를 잔뜩 넣고, 반으로 접어 올리브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지진다. 적당히 익은 것은 약한 열 쪽으로 옮기고, 새로 놓는 것은 강불 위에 놓는다. 손놀림이 능수능란하다.

내가 많이 잘 먹으면, 요리(?)한 카르멘이 기뻐할 거 같아서 주는 대로 4개를 먹었다. 후에 알고 보니 남자들도 2개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한다. 내가 살을 뺄 수 없는 이유는 이렇게 남 탓이라고 위로를 했다.
일 년에 한 두 번씩 옷을 모아 본국으로 부치는 얘기며, 엘살바도르에 부모와 가족이 살고 있고, 두고 온 아들 얘기를 할 때는 내가 내 아들 얘기할 때처럼 눈이 반짝반짝하고 신난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인들 자식·손주 얘기할 때는 소위 돈 내 놓고 얘기하라고 하는데, 이 친구의 고향·가족 얘기는 듣는 나도 흐뭇하다. 고향에는 얼마나 자주 가냐고 물으니 신분이 불법체류자라 본국에 가지는 못 한다고 했다. 마음이 짠해 오긴 했지만, 이 친구 나름대로 살아나가는 방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녀의 해맑고 통통 튀는 말과 행동은 나에게 고스란히 전이된다. 덩달아 듣는 나도 즐겁다. 같은 동네 살아도 교차점이 없으니 언제 다시 볼지 모르겠다. 그저 그 친구가 지금보다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뿐.
문의 (703)625-9909

<로리 정 갤럭시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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