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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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에 대한 포용을 따스하고 연민의 마음으로 차분하게 그려

2024-09-27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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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다 잘 될 거야’ (All Shall Be Well) ★★★★ (5개 만점)

▶ 배우자의 사망으로 큰 슬픔과 혼란
▶유산 갈등ㆍ주택난과 빈부 차이 속
▶차별과 함께 민감하고 조용히 비판

동성애에 대한 포용을 따스하고 연민의 마음으로 차분하게 그려

앤지(선 사람)와 팻(안경 낀 사람)이 차린 추석만찬을 팻의 가족들이 즐기고 있다.

60대 후반의 팻(매기 리 린 린)과 앤지(패트라 아우 가 만)는 홍콩의 한 아파에서 30여년을 함께 살아온 동성애 부부. 서로를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던 둘의 평화로운 삶은 갑자기 팻이 사망하면서 앤지의 세상을 큰 슬픔과 혼란에 빠트린다.

이 영화는 뜻밖의 상실 후에 오는 후유증과 함께 팻의 유산을 둘러싼 팻의 유가족과 앤지 간의 갈등 그리고 홍콩의 주택난과 빈부와 계급의 차이를 비롯해 동성애에 대한 포용을 따스하고 연민의 마음으로 차분하게 그린 가슴에 와 닿는 작품이다. 특히 동성애에 대한 차별과 함께 그 것에 대한 수용을 매우 민감하고 조용히 비판하고 또 설득시키고 있다.

봉제공장 근로자에서부터 시작해 공장의 주인으로까지 성공해 돈 걱정 없이 큰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팻과 앤지가 추석 저녁잔치 거리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장을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진수성찬으로 차린 저녁 잔치에 온 가족은 다 팻의 가족.


팻의 오빠 슁(타이 보)와 그의 아내 메이(후이 소 잉) 그리고 이들의 30대의 아들 빅터(륭 충 항)와 그의 새 애인 키티(레이철 륭) 및 팻의 여동생 패니(피시 리유 치 유)와 패니의 남편과 이들의 어린 두 남매가 참석자들. 슁은 경영하던 식당을 문 닫고 주차장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좁은 아파트에서 우버 운전사인 빅터와 함께 살고 있는데 빅터의 차는 팻과 앤지가 준 돈으로 샀다. 특히 앤지는 자기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빅터를 사랑한다. 그리고 패니와 남편의 관계는 순탄치가 못한 지경. 둘의 아이들은 앤지를 “할머니”라고 부른다.

그런데 팻이 자다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달랑 혼자가 된 앤지와 팻의 유가족 간에 팻의 아파트를 비롯해 유산을 둘러싸고 갈등이 일어난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한 가족이나 다름없던 앤지를 팻의 유가족이 완전히 남으로 취급하면서 팻의 유산을 자기들이 차지하려고 서두른다. 이로 인해 앤지는 상실로 인한 슬픔 속에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팻의 유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문제부터 앤지와 슁 부부 간에 의견이 다르다. 앤지는 팻이 생전 자기 유해를 바다에 뿌려달라고 말했다고 메이에게 강조하나 메이는 자기 마음대로 풍수지리를 보는 사람을 고용해 그의 말대로 납골당에 보관하겠다고 고집한다. 동성애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홍콩의 법 때문에 이 문제의 결정권도 팻의 가족이 하게 된다. 게다가 팻이 생전 유서를 남기지 않아 앤지는 팻의 유산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앤지는 아파트를 비워달라고 요구하는 슁에게 “앤지가 팻은 이 아파트에 내가 계속해 살기를 원했을 것”이라고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앤지의 친구가 “돈이 개입되면 모자지간도 사이가 벌어지게 마련이다”라고 말 했듯이 팻의 유산을 둘러싼 앤지와 팻의 유가족 간의 갈등은 팻이 사망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 가족이나 다름없던 앤지와 팻의 유가족간의 사이를 갈라놓고 있다.

그런데 영화는 팻의 유가족을 욕심이 많고 나쁜 사람들로 묘사하지는 않고 있다. 슁은 같이 사는 아들 빅터의 애인 키티가 임신을 하는 바람에 좁은 아파트에서 더 이상 살수가 없는 처지. 아파트를 비워달라는 슁의 요구에 대한 앤지의 대응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체념과도 같은 끝이 아름답다.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를 자상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로 앤지 역의 패트라 아우 가 만의 조용하고 깊이 있는 연기가 뛰어나고 조연진의 연기도 좋다. Ray Yeung 감독(극본 겸)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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