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鳥) 며느리

2024-09-19 (목) 이규성 수필가,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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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자 현관문 옆 큰 화분에 심어진 재스민 나무에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자주 앉았다 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그저 나무가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가 싶었는데, 어느 날부터 그 새가 현관문에 걸린 화환(wreath)속을 들락날락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호기심에 화환속을 들여다보니, 꽃잎에 가려진 한쪽에 새 둥지가 있었고, 그 안에는 아직 솜털도 나지 않은 새끼 3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우리 부부는 새 둥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현관문을 무심코 여닫으면서 새끼 새들의 부화를 방해했을까 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후로는 발걸음도 조심스럽게 옮기고, 가능하면 현관문 출입을 자제하기로 했다. 문을 꼭 열어야 할 때는 최대한 조용히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창문을 통해 새 가족의 움직임을 살피고, 어미 새가 새끼들을 돌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새 가족이 놀라지 않도록 현관문을 더욱 조심스럽게 여닫으며 드나들었다.
새롭게 만난 이 새 가족이 예쁘기도 했지만, 갓 부화한 새끼들을 돌보는 어미 새의 정성스러운 모습이 기특하고 사랑스러워 우리는 어미 새를 “새(鳥)며느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작은 새들조차 부모와 자식 간의 애정을 느끼게 해주었고, 자연스럽게 그들을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러한 마음 가짐은 이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미 새가 둥지를 드나드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우리가 현관문을 열 때마다 어미 새 는 둥지를 떠나며 새끼들에게 경고하듯 지저귀곤 했고, 잠시 후에는 현관 앞 나무 위로 자리를 옮겼다.

어린 새끼들은 엄마의 경고를 알아들었는지 둥지 안에서 숨죽인 채 조용히 어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제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어느 날, 현관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잡았다가 깜짝 놀라 손을 떼고, 창문으로 가서 밖을 내다보니 새끼 새들이 어느새 자라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둥지를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매일 새 둥지를 보면서도 새끼들이 얼마나 컸는지 들여다보지도 못했었는데 어느새 날갯짓하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눈여겨보지 못한 사이에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이제 곧 새(鳥) 며느리 부부가 “새끼들을 데리고 떠나겠구나!” 하는 생각에 갑자기 서운한 마음이 밀려왔다.

힘들게 새끼들을 키워낸 어미 새가 마치 자랑하듯, 큰 소리로 지저귀며 “이제 날아올라 봐!”라고 외치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 날아오르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새끼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는 어미 새의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이 장면을 보며 우리는 새들이 곧 떠날 날이 가까워졌음을 직감했고, 그들을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었다.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이별이 따르는 법이라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이치를 떠올리며, 우리 또한 언젠가는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새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과의 이별이 이렇게나 섭섭하고 아쉬워질 줄은 몰랐다.

어린 새들이 날갯짓 연습을 더욱 열심히 하는 것을 보니, 이 가족이 떠나갈 날이 가까워진 듯했다. 그동안 새(鳥) 가족과 한 지붕 아래서 함께 했던 순간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 작고 연약한 생명들이 성장해 둥지를 떠나려는 모습을 보며, 자연의 섭리와 생명의 경이로움을 다시금 깨달았다. 비록 그들을 보내는 것이 아쉽지만, 그것 또한 자연의 순리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규성 수필가,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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