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타샤 사린 칼럼] 트럼프와 해리스의 공약 가격표

2024-09-18 (수)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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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대선의 첫 대통령후보 토론회에서는 “적자”라는 단어가 무려 열 세 번이나 나왔다. 토론회에 참가한 각 후보는 실질적인 연방 재정적자 해소안을 제시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1992 대선의 최종 승자인 빌 클린턴은 지난 반세기 사이에 예산 흑자를 달성한 유일한 대통령이다.

지난주에 열린 공화, 민주 양당 대선후보 토론에서 적자라는 단어는 단 두 차례 언급됐다.

사안의 화급성을 감안하면 그건 유감스런 일이다. 미국의 부채는 지속불가능한 경로에 놓여 있다. 의회예산국(CBO)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방부채가 2027년에는 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에 작성된 기록을 앞지를 것으로 예상한다. 재정적자는 좀처럼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뒷걸음질을 치지 않는다. 국가안보 우려와 인구 고령화 및 기후변화에 따른 실존적 위협 등의 이유로 미국은 틀림없이 앞으로 수년 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공적 투자를 필요로 할 것이다.

물론 21세기로 접어든 이후 열린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속 시원한 부채 해소방안을 제시한 후보는 단 한명도 없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트럼프의 제안은 앞으로 10년간 최소한 4조 5,000억 달러의 추가적자를 가져올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카멀라는 공화당의 감세안을 어느 정도 수용하느냐에 따라 실질적으로 상당액의 적자를 줄일 수 있다. 최악의 경우, 그녀의 계획이 적자를 추가하게 된다 해도 그 규모는 트럼프의 공약 이행에 필요한 전체 예산의 1/5에 그친다.

트럼프와 해리스 사이의 격차는 두 가지 근본적인 정책 차이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다.

첫째, 해리스는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대한 세금인상을 지지하는 반면 트럼프는 이들에 대한 감세를 원한다.

해리스는 양도소득세 변경을 제외하곤 조 바이든이 정부예산안에 명시한 세금인상안을 사실상 거의 그대로 수용할 것이라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고소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의 경우 해리스는 바이든이 제안했던 것보다 인상률을 낮출 계획이다.) 전체적으로 해리스의 제안은 향후 10년 동안 부유층과 대기업으로부터 5조 달러의 추가세수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트럼프는 10년간 부유층과 대기업에 수 조 달러에 달하는 감세혜택을 제공하려 한다. 그는 인하된 최고 부유층의 소득세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자신이 “미국 생산자”로 분류한 대기업을 대상으로 21%의 현행 법인세율을 15%로 낮춤으로써 이들에 대한 감세혜택을 확대할 계획이다. (어떤 기업이 미국 생산자 자격을 얻을지는 불투명하고, 따라서 이같은 조치가 연방 적자에 미칠 영향도 불확실하다.)

필자는 트럼프와 그의 보좌진이 필자가 뽑아낸 수치에 분명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여러 차례 되풀이해 주장했듯, 그들은 감세가 경제성장을 촉진시켜 필요한 예산을 스스로 충당할 것이라고 말한다. 기업들이 감세로 절감한 비용을 새로운 공장을 매입하거나 신상품을 출시하는 등 자체적인 투자에 사용할 경우 경제 성장에 힘이 실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감세 비용을 상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트럼프의 감세는 - 보다 일반적인 우리의 역사적 경험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 대단히 값비싼 정책임이 입증됐다. 2017년에 시행된 ‘감세 및 고용법’의 영향에 대한 최상의 실증적 증거는 감세로 인한 경제성장 효과가 같은 이유로 41%나 줄어든 법인세 징수액의 단 2%를 상쇄하는데 그친다는 것이다. 이같은 접근법을 배가하는 것은 국가 재정에도 문제가 된다.

두 후보 사이의 두 번째 중요한 차이는 무얼까?


해리스는 저소득자와 중간소득자를 위한 세금감면에 전념한다. 해리스의 선거팀은 가족과 중소기업 및 새 주택소유자를 위해 세금을 공제해주거나 기존의 세금공제를 확대하는 형태로 부유층에 대한 세금인상을 저소득층 세금인하와 결합시킨다.

반면 트럼프가 수용한 유일한 세수 증대안은 글로벌 관세 뿐이다. 관세 부과에 따른 경비는 미국인들의 구입하는 상품의 가격 상승을 가져오기 때문에 글로벌 관세는 결국 국내 소비자들에게 추가로 세금을 물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분명히 말해 관세는 적자를 줄여준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추산에 따르면 글로벌 관세를 통해 미국은 향후 10년간 대략 2조 7,500억 달러의 추가세수를 거두어들일 수 있다. 그러다 무역 상대국들의 보복관세를 감안하면 이 수치는 2조 달러 선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적자감소를 어떻게 달성하느냐가 중요하다. 트럼프가 제안한 글로벌 관세는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미국인들에게 물품구입비로 연간 수 천달러를 추가로 지불할 것을 강요한다.

국가 재정이라는 측면에서 공정하게 비교해 보면 이번 선거가 승자를 가리기 힘든 초접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적자가 이번 선거의 최고 쟁점이라면 해리스가 확실한 선택이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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