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가 하나 있었다. 혈연관계에 있던 수컷끼리는 서로 친했다. 같이 놀러 다니기도 하고 함께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니기도 했다. 팀을 짜서 힘을 모아 사냥을 나가기도 했다. 사냥감은 서로 나누어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동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두머리 그룹에 속해있던 개체들이 병으로 죽으면서 조직이 불안정해 지던 중 공동체는 두 집단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두 집단 사이에 오가던 발길이 뜸해지고 급기야는 발길이 끊기고야 말았다.
점점 관계가 소원해지고 서로에게 적대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두 집단은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몬터규와 캐풀렛 가문처럼, 영화 대부에 나오는 코를레오네와 바르지니 조직처럼 영원한 앙숙이 되었다. 두 집단 간의 교류는 완전히 끊어졌다. 서로의 영역에는 분명한 금이 그어지고 절대로 침범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집단으로 갈라지고, 습격이 시작되었다. 수컷들은 지속적으로, 조직적으로 다른 집단의 수컷들과 연약한 어린이들을 살해했다. 해마다 여럿이 이렇게 죽임을 당했다.
한때 공동체를 이루었던 집단이 둘로 갈라져서 원수지간이 된 이야기는 너무도 흔해서 굳이 칼럼에서 다루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독자들도 있겠다. 이 시나리오는 인간 사회에서는 흔하지만 인간 사회에서만 가능하다고 여겨져 왔다. 그래서 지난달에 발표된 논문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위의 시나리오는 인간이 아닌 침팬지 사회에서 목격되었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와 여타 동물 사회가 어떻게 다른지는 인류학에서 큰 관심이 있는 주제다. 사회의 갈등과 폭력의 발생은 특히 중요하다. 인간과 달리 여타 동물 사회의 갈등과 폭력은 자원에 대한 경쟁에서 온다. 먹거리를 가지고 다투거나, 짝짓기에 대한 기회를 가지고 다투거나, 먹거리와 짝에 대한 접근권이 걸려있는 영역 싸움이 그렇다.
그렇게 자원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은 대부분 폭력적이지 않다. 서로 더 우세하다고 시위하고 한쪽에서 졌다고 인정하고 물러나는 것으로 싸움이 끝난다. 뿔이 서로 얽혀서 피를 흘리면서 싸울지도 죽을 때까지 싸우지 않는다. 다툼에서 입은 상처 때문에 결국 죽더라도 말이다. 이러한 다툼에 원한이 맺혀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경우도 없다.
무엇보다도 이유 없이, 그러나 죽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집단 구성원을 마음먹고 죽이는 일은 없다. 예외적으로 일어나는 영아 살해 역시 아기에 대한 원한이라기보다는 수유 등으로 가임기가 정지된 암컷의 가임기를 촉발한다는 면에서 생존과 번식을 위한 냉혹한 계산이 깔린 살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제인 구달이 50년 전, 침팬지 무리가 복수를 결심하고 매복해 있다가 상대 집단원을 집단 구타해 살해하는 현장을 보고했을 때 학계는 이를 일반적인 사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도 ‘인간적인’ 폭력이었기 때문이다.
인간 연구자만큼 오래 사는 침팬지 사회에서 대를 이어 치르는 보복 살해를 목격하기란 쉽지 않으며 특수하고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 꾸준히 일어나는 상황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하지만 최근 30년 동안의 장기 추적 연구는 이것이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대를 이어 진행해 온 조직적 폭력임을 알려주었다.
침팬지 사회에서도 대를 이어 살해에 이르는 복수심을 지닐 수 있다면, 우리가 여태껏 이해해 왔던 인간의 폭력성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는 가능성을 제기하게 한다. 인간의 폭력성은 병든 문명사회가 빚어낸 타락이 아니라, 600만-700만 년 전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깊은 뿌리일지도 모른다.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한 철학적인 논의는 전공자가 아닌 내게는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심오하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윤리 시간에 배운 정도의 성악설을 생각한다면, 최근의 침팬지 연구 결과는 성악설에 승리를, 성선설에는 1패를 안겨주는 것일까?
우리의 사촌인 침팬지 연구가 성악설의 손을 들어주었다면, 포악한 본성을 지니고 태어난 인류가 문화와 교양과 교육의 힘으로 평화로운 공존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을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적군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일 수도 있는 복수심은 당연한 것일까? 전쟁 소식이 끊이지 않는 요즘이 특별하게 어지러운 세상이 아니라 오히려 정상일지도 모른다. 이유 없는 복수심은 우리가 물려받은 유전자에 새겨져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같은 사촌인 보노보에게서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성악설의 손을 들어주기에는 아직 이르다. 보노보 이야기는 다음 칼럼에 이어서 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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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UC 리버사이드 교수 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