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은 1962년 저서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기업에는 오직 주주에 대한 책무만 있다”며 주주 자본주의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그는 1970년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기업의 유일한 사회적 책임은 이윤 극대화”라고 했다. 한 시대의 획을 그은 이 기고문은 미국식 경영 철학의 금과옥조였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2019년 8월. 미국 주요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로 구성된 미국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은 ‘기업의 목적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기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주주는 물론 고객·직원·협력사·지역사회 등 5대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나 논의되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미국 대기업이 공식 선언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삼성전자의 성과급 갈등은 ‘기업 이익은 누가 창출하고 누가 가져가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노사 노력만이 아니라 정부의 인프라 지원, 협력기업·소액주주의 공로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한발 더 나아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기업이 벌어들인 초과이윤의 일부를 국민에게 돌려주는 ‘국민배당금’을 제안했다.
김 실장의 아이디어는 이재명 대통령이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진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의 ‘기업가형 국가’ 개념과 맥을 같이한다. 마추카토는 미국 정부의 우주·군사 기술 개발 과정에서 휴대폰 카메라, 인터넷, 위성항법장치(GPS), 터치스크린 등 수많은 혁신 기술이 나왔고 애플과 같은 빅테크의 출현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그는 국가가 가치 창조자로서 산업화 기술 개발을 선도한 뒤 민간기업이 수익을 독점하면 이를 초과이윤 형태로 거둬 재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대통령의 ‘AI 기본소득’ 구상도 정부가 AI 전환을 가속화한 뒤 생산성과 이익을 사회가 나누고 불평등을 완화하자는 논리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든, 기업가형 국가든 기업은 공동체와 더불어 살아야 하고 미래 세대의 이익도 살펴야 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총파업을 내건 삼성전자 초기업노조의 문제점은 이 같은 연대와 공생의 가치를 다름 아닌 노조가 허물었다는 점이다. 비정규직이나 협력업체 노동자는 물론 같은 회사의 비반도체 부문 동료에 대한 배려조차 없다. 약자와의 동행, 사회적 책임의식 등 그동안 대기업 노조가 내세웠던 거추장스러운 명분은 팽개치고 오로지 사익 추구라는 민낯만 드러낸 꼴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는 정부 정책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정부는 자사주 소각, 배당 확대 등 신자유주의자들이 선호할 만한 주주 자본주의 정책을 추진해왔다. 반면 하청 노동자에게도 원청 교섭권을 주는 노란봉투법 등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가깝다. 각각 보수·진보적 의제다. 원래 대척점에 서 있어야 할 두 자본주의는 지금 대기업 이익을 서로 나눠먹겠다는 형태로 변질돼 투자 확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부가 ‘대기업·대주주는 강자, 노동자·소액주주는 약자’라는 도덕적 이분법 아래 정책을 편 탓이 크다.
기업 이윤은 장기 성장을 위해 재투자되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야 세금과 일자리가 늘고 미래 세대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기업 자금이 배당·성과급 등의 형태로 너무 많이 기업 바깥으로 빠져나갈 경우 경제 활력이 위축된다. 미국 제조업 몰락의 원인 중 하나도 기업이 주주들을 위한 일종의 ‘현금 지급기’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기업 이익을 배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과도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부는 부동산에 묶인 시중 자금의 물꼬를 자본시장으로 돌리는 ‘생산적 금융’을 통해 미래 성장 동력 확충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현대차와 같은 기업은 돈만 투입한다고 나오지 않는다. 국가적 지원 외에도 민간의 기업가정신, 안정된 노사 문화, 촘촘한 공급망 등을 필요로 한다. 이런 산업 생태계는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지고 한 번 망가지면 복구하기도 힘들다. 삼성전자 노조 사태를 계기로 기업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참에 일련의 정부 정책이 우리 기업 특유의 역동성을 훼손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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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욱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