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는 친구가 공항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자기가 다녀올 동안 S를 잘 챙겨주란다. 왜? 의아해하는 내게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우리 또래잖아.” 우리 또래? 그 한마디가 전화를 끊고도 오래 남았다. 돌아보니 그렇다. 매주 만나 라운딩하며 웃음을 나누는 열 명 중 대부분은 우리보다 대여섯 살 어리다. 우리 또래는 고작 세 명. 귀하게 여겨야 할 멤버가 맞긴 하다.
골프장에 처음 발을 들였던 40대의 나는 늘 막내였다. 주변의 골퍼들은 모두 언니였고 나는 그들을 따라가며 배웠다. 그런데 어느새 언니들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내가 그 자리에 서 있다. 의지하던 선배들은 떠나고 내가 선배가 되어버렸다.
‘어른’이라는 자리는 필드 바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속한 어떤 모임에도 묵직한 선배보다 경쾌한 후배가 더 많아졌다. 여태껏 그 사실을 별다른 자각 없이 지내왔는데. 오늘 새삼 그나마 남아있는 선배들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따르고 싶고 존경하고 싶은 이름이 몇이나 될까. 한 분 한 분 헤아리다 깨닫는다. 나 또한 이미 누군가의 선배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선배를 바라보던 시절은 지나고 이제는 후배의 시선을 받는 자리에 서 있는 나. 훗날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그 빈자리를 아쉬워하며 우리의 추억 언저리를 서성여 줄 후배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따라 스쳐오는 쓸쓸함 속에서 문득 에두아르 마네와 클로드 모네의 우정이 떠오른다.
마네와 모네. 사람들은 이름마저 닮은 두 사람을 혼동하지만 그들 삶의 출발선은 전혀 달랐다. 판사 아버지를 둔 부유한 집안 출신 마네와 가난한 상인의 아들 모네는 여덟 살의 나이 차이만큼이나 살아가는 모습도 달랐다. 마네는 자신의 풍요를 어려운 후배 화가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가난의 한가운데에서도 화가로서 실력을 인정 받기 위해 허덕이던 모네에게 물감을 나누어 주고 모네가 그린 그림도 사 주는 등, 마네는 선배로서의 가르침과 사랑을 주는 버팀목이었다. 모네 역시 그런 마네를 존경하며 따랐다.
세월이 흘러 마네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대표작 <올랭피아>가 미국으로 팔려 갈 위기에 놓였다. 그때 모네를 비롯한 마네의 후배 화가들이 발 벗고 나섰다. 사랑하는 선배의 작품이 조국을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모금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들의 헌신으로 <올랭피아>는 프랑스에 남아 지금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는 좋은 선배를 만난 모네가 부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좋은 후배를 남긴 마네를 닮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든다. 주위를 돌아보며 생각한다. 내게 ‘진정한 선배’라고 말해 줄 후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아니, 나는 그런 이름으로 기억될 만한 관계를 지금 만들어 가고 있는가.
마네와 모네 같은 그런 우정을 만들고 싶다.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미는, 작은 성취를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어려운 순간에 따뜻한 격려를 건네는 - 그것은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나를 통해 누군가가 조금 더 용기를 내고, 조금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친구의 부탁대로 S를 잘 챙겨야겠다. 그것은 곧 내 곁의 소중한 인연을 귀하게 지키는 일이니까.
<
성민희 수필 평론,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