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UH 해밀턴 도서관 산책 (13)

2024-09-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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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가니 공지영 저, 창작과 비평사, 2009년

UH 해밀턴 도서관 산책 (13)

엘리 김 UH 해밀턴 도서관 사서

지난 4월 공지영 작가가 자신의 저서 ‘도가니’의 영문판 출간을 기념하여 하와이 대학 한국학 센터에서 북 토크를 가졌습니다.

이 행사에서 공지영 작가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와 그 이후 한국 사회에 반향에 대해서 솔직히 의견을 공유하였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참석 했었고, 출간 당시 읽었던 ‘도가니’를 행사 이후 작가의 말을 기억하며 다시 읽어 보기도 하였습니다.

‘도가니’는 실화를 기반으로 하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일어난 장애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과 성폭력, 또 이를 고발하고자 하는 자들을 억누르고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는 기득권 세력과 그들의 커넥션, 약자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공지영 작가는 실제 있었던 사건의 공판 기사를 보다가 이 이야기를 소설화 하겠다고 결심하고, 피해자들을 만났으며,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이 소설은 분노를 일으킵니다.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견고한 권력에 대한 분노, 약자를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입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무력감에서 비롯됩니다.

이 소설의 화자는 그저 평범한 소시민인 기간제 교사입니다. 그는 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목격한 뒤, 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애쓰지만 좌절하고 맙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 화자처럼 권력에게 홀몸으로 대항할 수 없는 개인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크던 작던 권력과 타협하고, 수긍하고, 또는 반항하지만 크게 달라질 게 없는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불의에 목소리를 내야 할까요? 소설의 모티브인 실화에서 사건은 해당 학교에 재학중인 교직원들에 의해 고발되었습니다. 그들의 고발은 국가 기관에 의해 오랜 기간 무시되었고, 결국 재판에 회부된 뒤에도 관련자들에게는 가벼운 처벌만 내려졌습니다.

가해자들은 아직 건재하지요. 하지만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린 교직원들이 없었더라면 공지영 작가가 이 사건을 알 수 있었을까요? ‘도가니’가 쓰여지고 이 소설이 한국 사회에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요?

2011년 소위 ‘도가니법’이 제정되어 장애인과 아동을 성폭행했을 경우의 형량이 늘어났으며 공소 시효도 폐지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인기 배우인 공유씨의 경우, 이 소설을 군대에서 직접 읽고 출연을 자청하였다고도 합니다.

2006년 관계자들의 솜방망이 처벌로 일단락된 이 사건은 5년 후, 법의 개정과 사회의 각성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는 공지영이라는 뛰어난 작가의 힘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불의를 외면하지 않았던 교직원들의 목소리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단단한 벽에 작은 구멍을 내는 소시민 하나하나가 결국은 벽을 무너트리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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