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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시나요? 사랑하시나요?

2024-09-03 (화) 한태일 목사 / 가든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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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보내온 ‘좋은 글’ 가운데,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의 차이 몇 가지를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즐거워집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겨울도 봄 같지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겨울은 겨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할 말을 다 할 수 없지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다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매일 기억나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가끔 기억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다 주고 싶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것만 해주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딴 사람에게 잘해주면 질투가 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딴 사람에게 잘해주면 아무렇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울고 있으면 같이 울게 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울고 있으면 위로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은 길어도 짧게 느껴지지만 좋아하는 사람과의 시간은 길면 넉넉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의 시작은 눈에서부터 시작되고 좋아하는 사람의 시작은 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좋아하다 싫어 지면 귀를 막아버리면 끝나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눈꺼풀을 덮어도 포도송이 같은 구슬로 맺히는 눈물이 납니다.”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왜 이렇게 말하는지 이해할 수는 있는 글이다. 또한 인간적으로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에 대한 차이를 생각하게 한다. 역시 사랑은 좋아하는 정도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은 그저 감정에 지나지 않으나, 사랑하는 것은 그 감정도 훨씬 깊은 것이며 사람의 의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은 금방 싫어질 수 있으나 사랑은 금방 식어질 수 없다. 그 사랑이 진실이라면 말이다. 물론 친구 사이의 사랑, 우정과 연인 사이의 사랑, 그리고 부모의 사랑은 또 차이가 있다. 우리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경험해 보았고,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또 다른 차원의 사랑이다. 부모의 사랑과 비슷하지만, 또 다르다. 훨씬 더 깊고 높고 넓고 길다. 인간이 하나님일 수 없기 때문에 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다.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을 뿐이다. 영원하고도 무한한 사랑, 극진한 사랑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기꺼이 죄인들을 위하여 내어 줄 수 있는 사랑이다.

그냥 내어주는 것이 아니다. 처절한 고난을 받고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이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주는 사랑이다.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끝없이 용서하고 품는 사랑이다.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조금도 없는 인간을 그렇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신구약 성경은 우리에게 계시고 있다. 그러니 그 사랑을 알고 깨닫아, 받아 누리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큰 은혜이며 복을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7-19)고 한 것이다.

9월이다. 더위도 한풀 꺾이고 선선한 바람과 함께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는 가을이 다가온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생각하며 지내기를 바란다. 그 큰 사랑을 받아 누리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잊지 않기 바란다.

<한태일 목사 / 가든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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